재난지원금은 ‘재난’과 ‘지원금’을 합쳐 만든 단어로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상반된 단어의 합성어다. 코로나19라는 재난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국민의 소득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마련된 제도인 만큼 정부는 2020년 5월부터 지금까지 1~4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했고, 곧 5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재난지원금을 두고 대상을 선별할 건지, 보편적으로 지급할 건지 많은 말이 오갔다. 경쟁이 익숙한 한국 사회는 보편적 복지의 순기능을 상상하기보다 관성적으로 역기능부터 걱정하는 것 같다.
정치인들은 재난지원금을 두고 사상검증을 하고 편 가르기를 하지만, 일상을 살아가는 생활인들은 알고 있다. 재난지원금은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어떤 프리랜서는 재난지원금을 받아 밀린 보험료를 냈다고 했다. 개인사업자다 보니 사회보험료를 혼자 내야 했고 빚으로 구매한 차와 집까지 재산으로 잡혀 사회보험료가 비싸진 게 문제였다. 그렇지만 가장 큰 문제는 코로나19로 소득이 0원이 됐다는 점이다.
프리랜서나 특수고용 노동자는 통상의 노동자보다 사용자에게 종속된 정도가 덜하다고 해서 대부분의 노동법을 적용받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증을 내고, 자신의 책임으로 노동한다. 자신의 책임으로 노동한다는 것은 일하며 발생하는 위험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는 코로나19 재난처럼 일하지 못할 상황이 생기더라도, 곧바로 월급이 깎이지 않는다. 재난 중에도 정해진 임금을 받을 수 있고, 회사가 휴업할 경우 휴업수당을 받을 수 있으며, 부득이하게 퇴사해야 할 경우 퇴직금을 받고, 실업급여를 받을 수도 있다. 모든 노동자는 임금을 받아 생활하기 때문에 갑자기 임금을 받지 못해 생활이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겹겹의 보호 장치를 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런 보호 장치가 없는 프리랜서는 지금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 0원 소득을 맨몸으로 견뎌야 한다. 정부는 프리랜서 지원금을 지급했지만, 뭐라도 해서 소득을 만들려고 아르바이트를 했거나, 소득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 사업자등록증을 냈던 프리랜서는 지원금도 받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일시적인 지원금만으로는 소득 공백을 메울 수 없다. 노동자나 프리랜서나, 모두 노동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똑같지만 종속성이라는 사소한 차이는 좁혀질 수 없는 간극이 됐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소득보장이다. 일을 통해 돈을 벌어 생활한다면 좋겠지만, 코로나19 때처럼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런데 그 위험을 고스란히 개인이 부담하도록 하는 건 부당하다. 일하지 못하는 동안 소득을 보장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동시에 다시 일터로 나갈 수 있게 도와 노동시장을 활성화하는 구조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정부는 2020년 12월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일정 소득 이상의 일자리는 모두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방향성에 동의하지만 코로나19 상황이 예상치 못하게 길어졌고, 언제든 비슷한 재난이 닥칠 수 있으니 서두를 필요가 있다. 우선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과 별개로 43%밖에 안 되는 비정규직의 고용보험 가입률을 끌어올려야 한다. 그리고 종속성의 차이로 고용보험에서 배제됐던 특수고용 노동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들이 빠르게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일하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취지에 맞게 ‘고용’보험이라는 용어부터 손봐야 할 것이다. ‘고용’은 사용자에게 종속됐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일하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 사회보험이 되려면, 실업보험과 같은 포괄적인 용어를 사용해 개념을 전환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