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현대제철 사내하청업체 14곳이 8월31일 폐업을 앞두고 현대제철 자회사 현대ITC에 지원하지 않은 노동자들에게 다른 사내하청업체로 전적하라고 일방 통보했다”고 30일 <매일노동뉴스>가 보도했다. 이에 따라 금속노조 충남지부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는 “8월 말, 9월 초 폐업을 예고한 사내하청업체 15곳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 현대ITC에 지원하지 않은 1천여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우려”했다. 지난 7월7일 사내하청업체 대표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어 현대제철은 자신들이 100% 출자한 자회사 현대ITC를 설립해 사내하청 노동자를 채용할 방침을 밝혔다. 이에 반발해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비정규직지회 소속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파업과 농성 등 투쟁을 벌여 왔던 것인데, 이번 전적 통보는 자회사로 이전을 거부하면서 투쟁하는 이들을 다른 사내하청업체로 전적해서 현대제철에서 해 오던 업무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인가. 이번 통보는 자회사 이전에 응하지 않는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현대제철의 해고통지인 것인가. 자회사를 설립해서 사내하청 노동자의 업무를 빼앗고 그 업무에서 내쫓기 위한 원청 현대제철의 마무리 수순의 하나인 것인가.

2. 지난 23일 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인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현대제철 당진공장 통제센터를 기습 점거해 농성에 들어갔다. 자회사 채용을 거부하고 현대제철의 직접고용을 주장·관철하기 위해서였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채용해 현대제철은 당진·인천·포항 등 지역별로 자회사를 9월1일 출범시키고자 몰아붙이고 있다. 이에 따라 사내하청 노동자 7천여명 중 5천여명이 채용절차에 응해 자회사 소속 근로자로 채용됐다고 한다. 그러니 뭔가. 다수의 비정규 노동자들은 자회사에 지원해 그 근로자가 되고, 소수가 반발해서 투쟁하고 있다는 것인가. 이에 대해 흔히 볼 수 있는 투쟁의 모양새라고 태연해 하고, 소수로 전락해서 격렬한 것이라고 비웃고 있는가. 오늘 현대제철 자회사를 둘러싼 비정규 노동자 투쟁에 대한 사용자 자본의 대응을 보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투쟁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전적 통지로 알 수 있다. 투쟁의 요구에 대한 사용자 자본의 최소한 검토 여지도 찾아볼 수가 없는 전적 통지였다. 고용·노동조건 등을 교섭하고 협의해야 할 상대로서 사내하청 노동자 투쟁을 대하는 최소한의 자세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사용자 자본의 방침과 명령에 따를 것인지, 배제와 추방을 당할 것인지. 이 나라에서 다른 비정규 노동자와 같이 현대제철에서 오늘 사내하청 노동자의 투쟁은 이렇게 취급받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투쟁이 어떻다고.

3. 현대제철은 순천·인천·당진 등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중 순천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제일 먼저 불법파견을 주장하며 원청 현대제철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벌써 10년 전에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당시 파견근로로 인정받는 것이 먼저라고 여겨 임금청구는 포함하지 않았다. 현대자동차를 제외하고, 특히 제철소에서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근로가 파견근로로 인정하는 법원판결을 찾아볼 수 없는 때였다. 임금청구를 하게 되면 인지대 등 소송비용이 부담됐기에 1심에서 파견근로로 인정돼 승소하면 항소심에서 임금청구를 추가하기로 했던 것인데, 다행히도 1심에서 승리했다. 자동차 생산공정이 아닌 제철소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최초로 파견근로로 인정받게 된 법원판결이었다. 그 뒤 항소심 광주고등법원에서도 파견근로로 인정받았고, 이에 원청 현대제철이 불복해서 대법원에 상고해서 그 재판이 진행 중이다. 1차부터 4·5차까지 진행 중인 사건에 순천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 대부분인 약 500명이 원고로서 참여했고, 이들은 원청 현대제철을 상대로 근로자로 인정할 것을 청구하고 있다. 지난 7월 초 현대제철에서 자회사 추진을 밝혔을 때, 순천공장 비정규직지회 간부와 통화했다. 상급단체의 일부 노조간부들이 자회사 추진에 응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하더라’ 소식에 현장 비정규직 간부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소란스러운 시국에 순천공장의 상태를 물었다. 순천공장은 아무런 동요도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순천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소송을 대리하는 나로서는 자회사 추진에 심란해 하지 않아도 됐다.

4. 원청은 원청이고, 자회사는 자회사다. 사용사업주의 지위가 원청과 자회사가 하나인 것이 결코 아니다. 파견법, 즉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파견대상 업무가 아닌 업무에 파견근로자를 사용하거나 파견허가를 받지 아니한 업체로부터 근로자를 파견받아 사용하는 불법파견 사용사업주에게 그 파견근로자를 자신의 근로자로 고용하도록 직접고용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원청 현대제철은 도급계약을 통해서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를 사용했던 것인데 그것은 이러한 불법파견이었다. 그러니 원청 현대제철은 사용사업주로서 파견근로자인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자신의 근로자로 직접 고용해야 했다. 파견법은 자회사를 통해서 파견근로자를 직접 고용하면 된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다. 만약 자회사를 통한 고용도 파견법상 사용사업주의 직접 고용의무 이행이라고 본다면, 이 나라에서 원청은 사내하청업체를 자회사로 운영하기만 하면 파견법상 책임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의 노동현장에서는 사내하청업체는 원청의 필요에 따라 설립돼 운영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니 사용자 자본에겐 노동에 대한 책임 없는 자유의 세상이 열리게 되는 것이고, 마침내 파견근로자를 맘대로 사용할 길이 열린다고 원청 사용자들은 환호할 일이겠다. 하지만 아니다. 자회사가 사내하청 노동자의 사용사업주인 원청일 수는 없다. 이와 관련해서 문재인 정부에서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자회사 설립 방식을 추진해 왔다. 이에 따라 많은 공공기관에서 자회사가 설립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 소속의 근로자로 됐다. 이와 관련해 고용노동부 등 정부의 가이드라인 등은 이런 자회사 방식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안의 하나로 안내했다. 이렇게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공약한 정부에서 자회사 방식을 안내하고 추진하니, 이 나라에서는 자회사 방식은 당연하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안이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 여기에 최근 자회사를 통한 채용은 직접고용 의무를 이행한 것이라는 하심급 판결 하나가 나왔으니 원청 사용자 현대제철도 이런 인식과 판결례에 기대서 밀어붙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5. 지난 6월 서울남부지법은 “한전FMS는 정부 정책에 따라 파견·용역근로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한전 지분 100%로 신설된 자회사”라며 “정부 지침도 이들의 정규직 전환 방법으로 자회사를 설립해 직접 고용하는 방식을 인정하고 있어 한전은 고용의무를 이행했다”고 판결한바 있다. 원고 노동자들을 대리해서 우리 사무소 유태영 변호사가 진행했던 사건인데, 파견법상 사용사업주는 원청 한전인 것이지 자회사 한전FMS가 아니라는 것이 명명백백한 것임에도 이런 판단을 하다니 도대체가 이 1심 판결을 납득할 수가 없다. 아무리 공공기관이라 해도, 문재인 정부가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을 정규직 전환 방안으로 자회사 방안을 안내했다 해도 파견법이 규정한 사용사업주로서 책임을 외면한 이런 판결을 선고해서 파견법이 보장한 노동자 권리를 저버리는 건 용납하지 못하겠다. 이런 분노로 나는 항소이유서를 작성해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판결에 기대서 자회사 설립을 추진한다니, 사용사업주 현대제철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나마 정부 탓을 할 수가 있는 공공기관도 아니다. 자회사를 통해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노라고 발표해서 원청 사용자로서 통 크게 베푼 것이라는 양 선전했고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법은 사용사업주인 원청에게 직접고용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지, 자회사가 직접고용하면 되는 것이라고 하고 있지 않다. 파견법에 따르면 불법파견으로 사내하청 노동자를 사용하고 있는 원청 현대제철은 사내하청 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하는 것이라서, 자회사 추진을 통해서 이를 외면하는 것은 부당한 것이다. 현재 현대제철에서는 자회사 채용에 있어 원청 현대제철을 상대로 불법파견 소송 등을 제기하지 않겠다는 부제소합의서 제출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자회사 추진으로 파견법상 사용사업주인 원청 현대제철이 직접고용 의무를 면할 수 없다는 걸 자백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원청 현대제철에 대한 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의 투쟁을 이렇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법이 규정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라.’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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