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20여년간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로 그라인더 작업 등을 해 왔다. 그는 지난해 3월 다니던 사내하청업체가 폐업하자 근처 다른 업체로 고용승계됐다. 그런데 해당 업체는 3개월 단기계약을 입사조건으로 내걸었다. 3개월 기간만료 후 한 차례 근로계약이 갱신됐지만 이번에는 6개월짜리 근로계약서를 체결해야 했다.
A씨는 지난해 10월 7미터 높이의 선박 블록 경사면에서 용접부위를 그라인더로 갈아 내는 작업을 하던 도중 안전벨트 고리가 빠져 미끄러졌다. 왼발이 철 구조물에 부딪혀 복숭아뼈가 골절되고 인대가 파열되는 산재사고를 당했다. 업체에서 공상처리를 해 2개월여 동안 쉬면서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회사는 그해 12월31일자로 6개월 기간만료가 됐다며 근로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부당하게 일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한 A씨는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다. 회사측은 “기간만료는 근로계약 자동종료 사유이므로 근로기준법 23조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A씨의 경우는 다행히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가 근로계약 갱신기대권을 인정해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근로기준법 23조2항은 “사용자는 근로자가 업무상 부상 또는 질병의 요양을 위해 휴업한 기간과 그 후 30일 동안은 해고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적어도 일하다 다친 경우에는 일정 기간 동안 해고를 걱정하지 말고 치료에 전념하라는 취지의 특별규정이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에서는 일하다 다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재계약되지 못하고 일자리를 잃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사용자는 산재를 당한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6개월 계약기간이 끝났다” “3개월 계약기간이 끝났다”며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다친 것도 서러운데 치료가 끝나기도 전에 계약만료로 해고될 위험에 내몰리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죽음의 공장이다. 1972년 창사 이래 470명, 한 해에 10명가량의 노동자가 업무상 사고로 죽어 나갔다. 하청노동자 사망 비율은 정규직보다 훨씬 높다. 2012년부터 지난달까지 최근 10년간 현대중공업 내 산재 사고사망자는 42명이다. 정규직이 13명이고 하청노동자가 29명이다(2021년 8월11일자 경향신문 참조). 현대중공업은 한국 사회에서 ‘위험의 외주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손꼽힌다.
일반적으로 비정규직 고용형태는 직접고용·간접고용·특수고용으로 구분된다. 직접고용은 임시직·파트타임·기간제 등이다. 간접고용은 용역·도급·파견·사내하청 등이다. 특수고용은 개인사업자 등록을 하고 근로를 제공하는 형태다.
오랫동안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는 간접고용으로 분류돼 왔다. 간접고용은 1차 하청, 2차 하청과 같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가지며 더 낮은 단계로 내려갈수록 노동자 처우는 나빠진다. 조선소에 고유한 물량팀 존재도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다단계 하청구조의 폐해뿐 아니라, 기간제 신분으로 인한 고통까지 얹어졌다. 2015년쯤부터 조선소 불황이 이어지자 하청업체들은 사내하청 노동자를 1년짜리, 6개월짜리, 3개월짜리, 1개월짜리 기간제 근로계약으로 고용하기 시작했다. 간접고용 하청노동자 신분에다가 기간제 신분까지 더해져 고용은 극도로 불안해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내 첫 직장이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로 입사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구제금융을 받기 전이었지만 그때도 정규직 입사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일은 고됐고, 위험했으며, 임금은 적었다. 긴 시간이 지났지만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열악한 처우는 나아지지 않고 있다. 도리어 시간이 지날수록 비정규 노동자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