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규수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무라비 법전의 동해보복(同害報復) 조항을 함축하는 글귀다. 다른 사람의 눈을 빠지게 한 자에 대해서는 눈만 빼야지 이까지 뽑아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고대 국가에서도 범죄에 대한 처벌을 법정화해 과잉보복을 금지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함무라비 법전(고조선의 8조법도 같다)과 같은 고대 국가의 법전에서 죄형법정주의의 원초적 사상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현대적 의미의 죄형법정주의는 범죄와 형벌은 미리 법률에 규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과거 봉건제 시대의 왕과 법관은 자의적으로 범죄와 형벌을 정해 잔혹하게 처벌하곤 했으나(죄형전단주의), 계몽주의의 확산과 시민혁명으로 근대 국가가 성립하면서 죄형전단주의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죄형법정주의가 형법상 기본원리로 정착하게 됐다.

문제는 법률에 대한 제정권이 있는 국회가 현실적으로 모든 범죄를 법률로 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범죄의 구성요건을 추상적으로 표현하거나, 하위 규범에 위임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사정이 생겼다. 조선은 모든 범죄와 처벌을 법전에 담고자 했지만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방식은 불가능하다.

처벌법규를 하위 규범에 위임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본질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는 처벌법규의 위임은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하고, 누구라도 해당 법률을 보면 하위 규범에 규정될 내용의 대강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예방법)을 보자. 이 법에 따라 질병관리청장, 시·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은 감염병 예방을 위해 “흥행, 집회, 제례 또는 그 밖의 여러 사람의 집합”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조치를 할 수 있다. 위반 시에는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이 있다.

이 같은 법률 조항을 보고 금지되는 여러 사람의 집합이 대강 어떤 것인지, 어떤 때에 금지되는 것인지 알 수 있을까. 가족 간 만남, 친목 모임, 영업을 위한 만남, 출근, 등교가 허용되는지 금지되는지, 허용된다면 언제부터 허용되고 몇 명까지 모이는 것이 가능한지 쉽게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질병관리청장, 시·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은 243명이나 된다.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243개의 고시를 일일이 확인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전에 서울 종로구에서 회사 행사에 참여하고 오후에는 성남시에서 지인을 만나고 저녁에는 충남 태안군에 가서 가족을 만나는 사람에게 적용되는 고시는 총 몇 개인가. 질병관리청장, 서울시장, 종로구청장, 경기도지사, 성남시장, 충남도지사, 태안군수의 7개 고시뿐일까. 잠시라도 거쳐 가는 곳까지 포함하면 수십 개에 달할 것이다.

어떤 지역에서는 5명 이상, 다른 지역에서는 10명 이상 모이는 것을 금지한다. 같은 지역에서도 오후 6시 전후로 모임에 허용되는 인원수가 다르다. 같은 장소에서도 회사 행사는 허용하지만 친목 모임은 금지한다. 다수의 인원이 모이지만, 실내 콘서트는 허용하고 실외 집회는 금지한다. 같은 시장이 발한 고시도 어제는 50명 이상 모이는 것을 금지했다가 오늘부터는 10명 이상 모이는 것이 금지한다. 시장은 10명 이상 모이는 집회를 금지하지만 구청장은 모든 집회를 금지한다.

문명국가에서 형벌을 이토록 불분명하게 정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전대미문의 코로나19 사태에 직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형벌로써 질서를 확보하고자 한다면 죄형법정주의의 본질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집합금지 고시를 위반하면 벌금 부과를 받을 수 있고 전과도 남는다. 주차위반 과태료 같은 성질이 아니다.

최근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는데 영장 청구 사유 중 하나가 집합금지 고시 위반이다. 그러나 집합금지 고시의 근거가 된 감염병예방법 조항은 죄형법정주의를 충족하지 못해 위헌성이 짙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죄형법정주의는 국가형벌권의 자의적인 행사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문명국가의 원리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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