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이 공인노무사(민주노총 울산노동법률원)

주식이라고는 ‘1도’ 관심이 없는 내가 요즘 주목하는 회사가 하나 있다. 온갖 경제 기사를 검색하면서 이 회사가 얼마나 잘 나가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한다. 좀 전에도 검색해 보니, 불과 4시간 전에 올라온 기사가 있다. 이 회사가 올해 3분기에 창사 최대 영업이익을 기록할 전망이라고 한다. 1월에는 “2020년 4분기 영업이익이 전 분기보다 98.9% 증가할 전망이다”는 기사가 나왔고, 7월에는 “올해 예상되는 영업이익 증가율이 1천% 이상이다”는 기사가 나오더니, 최신 뉴스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기사를 볼 때마다 가슴 깊은 곳에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 내가 진작 이 회사의 주식을 사두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 회사가 자신의 노동자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억해 주시라. 이 회사의 이름은 ‘효성첨단소재’다.

효성첨단소재는 ㈜효성이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인적분할하면서 2018년 6월 설립한 4개 회사 중 하나다. 주력 상품은 자동차 타이어의 보강재(이어코드)인데, 효성첨단소재는 4대 타이어코드(폴리에스터코드·나일론코드·스틸코드·비드와이어)를 모두 생산하는 세계 유일 기업이다. 특히 폴리에스터코드의 경우 무려 20년 동안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회사 홈페이지에는 “전 세계 자동차 절반이 효성의 타이어코드를 쓰고 있다”는 문구가 자랑스럽게 걸려있다. 타이어코드뿐 아니라 탄소섬유나 아라미드 섬유 등 신소재도 자체 개발해서 울산공장과 전주공장에 생산라인을 증설하고 있다.

설립 이후 꾸준히 영업이익을 내던 효성첨단소재는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2020년에 당기순이익을 흑자로 전환했고, 올해 1분기에만 4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효성 소재3형제 날았다” “효성 소재 삼총사 실적 고공행진” “효성3총사 역대급 실적 예고” 등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바로 그 무렵 ‘역대급 실적’과 함께 ‘역대급 해고’가 이뤄졌다. 타이어코드 중 스틸코드를 생산하던 경주공장을 폐쇄하면서, 경주공장에 근무하던 생산직 노동자 20여명을 정리해고한 것이다. 국내공장은 인건비가 너무 높아서 계속 적자가 난다는 게 회사 주장이었다. 앞으로는 베트남공장에서 스틸코드를 전량 생산하겠다는 게 회사 결정이었다. 노동자들로서는 경주공장 폐쇄 자체를 막아낼 도리는 없었다. 울산공장이나 전주공장으로 옮겨서 계속 근무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지난 10년 동안 많은 동료가 울산공장이나 전주공장으로 전보발령을 받기도 했었다. 그런데 회사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수를 뒀다. 경주공장을 폐쇄하자마자 노동자들에게 무기한 휴업명령을 하더니, 희망퇴직을 하라고 했다. 버티면 정리해고를 한다고 했다. 다른 공장도 경영사정이 어려워서 배치전환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울산공장과 전주공장 모두 생산라인을 증설하고 있고, 정년퇴직이나 사직으로 인한 결원까지 있는데도 “신규인원은 필요 없다”고 했다. 어떤 노동자가 이를 납득하겠나. 몇 달을 버티자 정말로 정리해고를 했다. “더 이상 휴업수당을 지급할 여력이 없다”는 게 경주공장 공장장의 담화문이었다. ‘역대급 실적’을 내고 있던 올해 1월28일의 일이다.

수많은 해고사건을 보았지만 효성첨단소재의 이번 정리해고만큼 분노가 치미는 해고는 없었다. 경영자로서 일말의 책임감도 느껴지지 않는 후안무치한 해고, 평생을 회사에 헌신한 노동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조차 없는 잔인한 해고, 시장에는 자신의 실적을 한껏 과시하면서 지방노동위원회에 제출하는 답변서에는 회사가 어렵다고 앓는 소리를 하는 분열증적 해고. 이런 해고를 강행한 회사를 표현할 만한 적절한 단어를 나는 찾지 못하겠다. 사람이라면 사이코패스라고 불러도 전혀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심문회의 장소에서 만난 해고 노동자들이 너무 순박해서 더 마음이 아팠다. ‘잘 나가는 회사’를 보면서 이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뭐라 위로할 말을 못 찾다가 겨우 한마디 했다. “효성은 정말 나쁜 회사네요.” 예상대로 지노위의 부당해고 판정이 나왔지만, 역시 예상대로 회사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회사는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노동자들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순박하게 웃기만 하는, 묵묵히 기계만 돌려왔던 이들은 정리해고를 겪으며 오히려 투사가 됐다. 역대급 실적에 역대급 해고, 이제는 역대급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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