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별도의 사업체를 만들어 기존 사용자가 하던 사업을 양도받았더라도 회사 지시를 지속해서 수행하고 임금을 받았다면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사업 양도로 포괄적인 승계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 회사가 일방적으로 근로계약을 종료한 것은 해고에 해당한다고 보고 절차를 밟지 않은 해고를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장낙원 부장판사)는 지난달 22일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구제 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고 5일 밝혔다. 고엽제전우회 수익사업 일환으로 운영된 용역사업소에서 사업소장 A씨와 관리부장 B씨는 2016년 1월부터 1년씩 계약을 갱신하며 근무했다. 전우회는 2020년 1월께 이들에게 용역사업소를 폐업할 예정이라며 사업장을 폐쇄하고 직원들을 퇴직시키라고 지시했다.
A씨와 B씨가 이러한 요구를 거절하자 전우회는 2020년 1월29일 ‘전우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등 직접적이고도 막대한 손해를 끼쳤으므로 2019년 12월31일자로 모든 직위와 자격을 박탈한다’는 내용으로 해임을 통지했다. 이에 A씨와 B씨는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며 충남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했다. 충남지노위는 “실질적으로 징계해고에 해당하는데도 정관에서 정한 징계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며 이들의 구제신청을 인용했다. 전우회는 중노위가 재심신청을 기각하자 지난해 9월 행정소송을 냈다.
전우회는 A씨와 B씨가 2018년 1월 별도의 법인을 설립해 용역사업소의 사업 일체를 양도하는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사업소 직원들 또한 포괄적으로 승계됐다며 이들과 근로계약이 종료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이들은 C사를 설립해 전우회와 양도계약을 체결했다. 또 전우회는 용역사업소가 본회와는 별개 취업규칙을 두고 있고, A씨와 B씨에게 사업소 직원에 대한 인사·징계권을 위임했기 때문에 이들은 근로자가 아닌 수임인이라며 위임계약의 해지에 불과하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법원은 전우회가 일방적으로 근로관계를 종료한 것으로서 해고에 해당한다고 전제한 뒤 해고 절차 역시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업양도 계약은 인적·물적 조직 일체의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그대로 이전하는 내용으로 보기 어렵다”며 전우회의 주장을 배척했다.
이어 “사업양도 계약의 일방 당사자인 A씨와 B씨는 종전과 같이 전우회의 지시를 수행하고 임금을 받아옴으로써 근로관계가 단절되지 않았다는 인식을 내비쳤다”며 “설령 전우회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이는 단지 A씨와 B씨가 근로의무를 해태한 것이라 평가할 여지도 있다”고 판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