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여름휴가를 앞둔 지난 금요일(23일), 공공기관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의 소장을 검토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 온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정책에 따라 기간제 같은 비정규직에서 벗어나게 된 국립공원공단의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이 사용자인 공단을 상대로 차별이 부당하다며 각종 수당지급을 청구하기 위한 소장이었다. 근로기준법 6조(균등한 처우)의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한 차별로 접근해 작성해 온 후배 변호사의 소장 초안에 대해 나는 빨간펜으로 줄을 그어 가며 지적했다. 수정해서 다시 작성하라고 지시하면서 20년 넘게 노동사건을 수행해 온 ‘고참’ 변호사로서 “쉽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한 마디 더 덧붙였다. 무기계약직이 근로기준법 6조에 따라 균등한 처우를 보장해야 하는 ‘사회적 신분’으로 인정돼 정규직과 균등하게 처우해야 한다고 법원에서 법적 판단을 받을 수 있다면, 이것만큼 쉬운 것도 없다. 이 법만큼 이 나라에서 무기계약직 노동자가 차별에 맞설 수 있는 쉬운 법도 없다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물론 MBC 무기계약직 사건에서 2017년 서울남부지법이 무기계약직을 사회적 신분으로 인정해 근로기준법 6조를 적용한 판결한 사례가 있고, 나도 당연히 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해 그렇게 해석해야 한다는 걸 적극 지지한다. 의미가 큰 법리인 건 분명하지만, 노동자 수백명을 대리하는 변호사로서는 법리적 주장으로 그것만을 내세우는 것은 위험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대법원 등 기존 법원 판례는 그걸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대법원이 그와 같이 판결할 것이라고 보고 그 법리적 주장만으로 소장을 작성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나는 후배 변호사에게 말해야 했다.

2. 기간제 비정규직에서 기간이 없는 무기계약직이 돼 받고 있는 차별에 대한 소장을 검토하자니 최근까지 시끄러웠던 논란이 떠오른다.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두고서 공정에 반한다고 한참 시끄러웠다. 특히 정규직 채용 기회를 박탈당한 청년일자리 문제를 거론하며 공정하게 경쟁시험을 통해서 채용해야 했다며, 비정규직에 특혜를 준 것인 양 떠들어댔다. 소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일부 예비후보자들은 대표적인 불공정 사례로 들고 있다. 경제지를 비롯한 각종 언론에서 이런 취지의 보도를 쏟아냈다. 이런 세상이니 여간해서는 ‘그런가 보다’할 지경이다. 한때 너무도 당당했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불공정을 조장하는 염치없는 구호로 추락해 들릴 정도다. 도대체 이 무슨 일인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으로 어떤 대단한 권리를 보장받았기에 이런 것일까. 많은 비정규 노동자를 상담하고 그 노조를 자문해 온 나는 공공기관 비정규 노동자가 정규직으로 전환해 노동자 권리를 대단하게 보장받았노라고 내게 자랑하는 걸 듣지 못했다. 비정규직으로 해 오던 일, 현장기능직 등의 업무를 그대로 할 뿐이고, 임금 등 처우도 크게 향상된 것도 아니고 조금 개선된 것뿐이다. 이 나라에서 불공정문제로 대대적으로 떠들어 댔던 ‘인국공 사태’, 즉 인천국제공항공사의 보안검색 비정규직도 정규직으로 전환해서도 여전히 보안검색 업무를 수행하고, 임금 같은 처우도 대졸사원 공채로 채용된 정규직과는 현저한 격차를 보일 게 분명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돼 온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따라 정규직이 된 노동자들의 일과 권리는 이렇게 불공정이라 지탄할 만하지 않다.

사실 이 나라에서 비정규 노동자와 노조는 소심하다. 20여년 동안 노동자를 상담하고 소송해 온 자로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현장기능직인 비정규 노동자가 대졸사원 채용절차를 통해 고용된 정규직 사원과 동일한 임금 등 처우를 보장해 달라고 주장하고 요구하는 걸 보지 못했다. 비정규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겠다는 비정규직의 노조라면 분명히 그럴 만도 한데, 이상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나는 현장기능직은 일반직과는 차별받는 것이 마땅한 신분으로 여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그래서 이 나라에서는 사회적 신분인가 하는 의문도 던진다. 그러니 현장기능직이기에 받는 차별은 차별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기껏해야 자신과 같이 현장기능직의 업무를 수행하는 정규직과 비교해서 차별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바로 소장을 작성하고 있는 국립공원공단 현장지원직 노동자의 경우가 그렇다. 자신들과 같은 일을 하는 일반직 노동자를 비교해서 무슨 수당을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며 그 차별을 문제 삼아 소송하고자 하는 것이다.

3. 이처럼 내가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정책에 따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 노동자를 대리해서 국립공원공단을 상대로 한 소장 작성을 검토하던 23일, 같은 정책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할 비정규직의 투쟁이 있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공단을 상대로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파업하면서 집회투쟁을 벌였다. 집회가 열리기 전부터 원주시장·국무총리까지 나서 집회하지 말 것을 촉구하며 엄단하겠다고 해서 관심이 집중돼 있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사회적 거리 두기 준수를 강조하는 정부와 지자체에 대해 민주노총은 이를 무시한 채 집회투쟁을 하고 있다고 보도됐다. 당연히 코로나19의 전염 방지를 위해서는 단 몇 사람이라도 모이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그래서 코로나19 전염 방지를 내세운 정부의 말을 신뢰하고 집회투쟁은 이를 무시한 것이라 여기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당초 노조가 경찰에 집회신고를 할 때는 원주시는 거리 두기 2단계였다. 100명 미만 집회가 가능했는데, 집회 당일에 원주시는 거리 두기 3단계로 상향하면서, 특별히 집회는 거리 두기 4단계와 같이 1인 시위를 제외하고는 일체 금지했다. 아무리 방역지침을 철저히 준수하겠다고 약속을 해도 소용이 없었고, 결국 집회는 경찰이 원천봉쇄한 채 전개되면서 불법이라는 비난을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됐다. 비난은 쉽다. 하지만 투쟁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정규직 전환정책에 따라 그동안 많은 공공기관에서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그럼에도 건강보험공단의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민간위탁업체라는 이유로 아직까지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제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공약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도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추진이 되지 않는다면 어찌될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코로나19를 무릅쓰고 비정규직으로서 사력을 다해 투쟁하는 것이겠다. 비정규직투쟁을 이렇게 바라보면,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원망스럽다. 그런데 사회적 거리 두기로 원천봉쇄해야 하는 것일까. 사회적 거리 두기의 최고 단계인 4단계에서도 회사에서는 업무 수행을 위해 필요한 행위는 금지하지 않는다. 회사 업무를 위해서는 방역수칙을 준수하는 한 참석인원 제한 없이 각종 회의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집회투쟁에 참석하는 비정규 노동자로서는 업무수행을 위해 회사에서 일하는 것과 비교해서 자신을 위한 투쟁이 차별받는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4. 2019년 국립공원공단 비정규직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 현장지원직 노동자를 차별하는 데 대해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당시 상담해서 진정했던 사항 중 일부가 인권위에서 차별로 인정돼 시정권고를 받아냈다. 2020년 11월 인권위는 일반직 직원이 지급받는 대체휴무수당·직무역량계발비를 지급하지 않는 것은 현장지원직 직원에 대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며 이를 시정하라는 권고결정을 했다. 그리고 이제 공원 현장 일선에서 탐방객 안전관리, 자연환경해설, 시설물 관리, 청소, 행정보조, 연구 등 국립공원공단의 필수업무를 수행하고 있는데도 현장지원직으로서 같은 일을 하는 일반직이 받는 각종 수당을 지급받고 있지 못하니 오늘은 소송을 통해서 그 차별에 맞서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나는 더 할 말이 없다. 그래서 마무리 말은 인권위 진정을 앞두고 당시 이원진 공공운수노조 국립공원공단희망지부장이 했던 <매일노동뉴스> 인터뷰 기사를 읽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 온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당사자인 노동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무엇이 차별에 맞서 소송에 이르게 한 것인지 알 수 있다.

“공단은 정규직이 받는 대체휴무수당·장기근속수당·학자금보조비·부양가족직무급·학자금보조비·역량개발비를 현장지원직에게 주지 않는다. 정규직도 현장지원직이 하는 시설관리나 해설교육 업무를 한다. 즉 정규직의 수당은 어떤 일(직무)을 하는지와 상관없이 주는 거다. 그런데 우리는 제외하고 있다. 고용형태에 따라 수당을 차별한다. 무기계약직이라는 사회적 신분이 차별의 원인인 셈이다. 신분제와 다를 바 없다.” “무기계약직은 우리에게 또 다른 차별에 다름 아니다.”(매일노동뉴스 2019년 4월16일)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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