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 내렸다. 한순간에. 매번 걷는 길이 참혹한 사고 현장으로 바뀌어 버렸다.

▲ 박영민 공인노무사(노동승리 노동법률사무소)

지난 9일 오후 4시23분께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구역 내 건축물 철거공사 중 5층 건물이 붕괴됐다. 무너진 건물은 공사장 앞 버스정류장에 정차 중이던 시내버스를 덮쳤다. 너무나 소중한 생명 아홉 명이 목숨을 잃었고, 또다른 여덟 명도 큰 부상을 당했다. 사상자 중에는 청춘의 꽃을 피우기도 전에 져버린 어린 고등학생도 있고, 큰 아들의 생일에 자신의 집을 두 정거장 남기고 돌아가신 분도 있다. 곰탕집을 운영하다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 남광주시장에 들른 뒤 시내버스에 탔다가 참변을 당하신 분도 있다. 한분 한분 모두가 누군가에는 소중한 가족이자 친구였으며,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던 이웃이었다. 허망하게도 마른하늘의 날벼락과 같은 참사가 또 한번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고 말았다.

사고 당일 작업자들은 5층 건물 옆에 건물과 비슷한 높이의 토산을 쌓고 굴착기를 올려 작업을 진행했다. 현장의 굴착기 작업자들은 이상징후를 감지하고 작업을 중지하고 모두 대피했으나, 관계자들은 철거현장과 인접한 도로는 통제하지 않았다.

철거건물은 인도와 바로 접해 있고, 인근에 버스정류장이 있었지만 보행자 통로와 같은 안전장치는 없었다. 철거현장에 유일하게 설치된 가림막은 마구잡이식 공사를 눈가림할 도구에 불과했다. 도로에 대한 통제, 충분한 신호수 배치, 통행량을 고려한 작업시간 설정 등이 이뤄지지 않았다.

철거업체는 해체계획서를 준수하지 않고 철거를 시작했다. 해당 업체가 제출한 해체계획서에는 건물 상부부터 하부로 철거하고, 안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층별 지지대를 설치하는 내용이 있었다. 옥탑·슬래브·내력벽 등으로 순차적인 철거를 하게 돼 있었다. 시민제보 내용에 따르면 상부층은 둔 채 3층 이하의 저층부를 해체하는 모습이 포착됐다고 한다.

사고 당일 현장에 감리자는 부재했고, 재개발 공사 전 과정을 책임져야 할 시행사는 안전장치 설치나, 정류장 이동과 같은 현장 안전관리에는 무심했다. 광주 동구청은 감리자가 현장에 상주하지 않을 것이라는 철거계획서를 받고도 별다른 관리감독을 하지 않았다. 계획대로 철거작업이 이뤄지는지 단 한 차례도 현장점검하지 않았다. 불과 두 달 전 같은 구내 계림동에서 철거 도중 건물이 무너져 2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는데도 말이다.

중대재해와 참사는 반복하고 있다. 우리 일상이 돼 버린 느낌이다. 모든 비극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상황이 벌어진 당시가 아니라 그 이후의 대처다.

첫째, 책임자 처벌 및 유족에 대한 보살핌이다.

이번 재해 책임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 및 처벌이 강력하게 이뤄져야 한다. 유족들에 대한 사과, 심리치료지원, 보상이 신속하게 진행돼야 한다.

둘째, 건설현장의 불법하도급 근절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시공사인 HDC산업개발과 계약을 맺은 업체가 아닌 다른 업체가 철거를 진행했다고 한다. 건설산업기본법이 하청업체의 재하도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데도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다단계 불법하도급이 계속되고 있다. 돈보다 사람이 먼저인데,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불법행위를 계속하다 소중한 생명을 잃고 말았다.

셋째,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적용 확대다.

올해 초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에는 원안에 있던 발주처와 공무원 처벌 조항이 제외됐다.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과 감시감독을 소홀히 하고 해태한 공무원을 처벌하는 조항이 빠진 것이다. 중대산업재해뿐만 아니라 중대시민재해에서도 원청에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 수차례 민원에도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동구청의 관계 공무원들에게도 안전보건 조치의무 위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번 사고는 안전불감증이 부른, 예견된 인재다. 조금만 주의했더라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살펴봤다면, 조금만 더 책임감이 있었더라면 이 불행한 재해가 우리를 비켜 가지 않았을까라는 허망한 상상을 하게 된다. 새벽 내내 광주에 비가 온다. 떠난 자들의 아픔이고 남은 자들의 비통함이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그들이 사과하고 책임을 통감한들 소중한 이들이 떠나 버렸는데, 누가 이들을 위로해 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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