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두규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충남사무소)

한 산별노조 산하 모 지회는 오랫동안 지역지부의 주축으로 활동해 오고 있다. 안으로는 조합원들의 단결로 노동자가 가져야 할 권리들을 쟁취해 왔으며, 밖으로는 연대해야 할 곳에 연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할 시간이 다가오던 어느 날, 몇 명에 불과하던 기업별노조 조합원들이 갑자기 불어나면서 지회의 악몽은 시작됐다. 기업별노조 조합원이 늘어나는 속도는 가히 전격적이라고 평가할 만했다. 인사·총무 담당 부서의 사원이 산별노조 조합원에게 탈퇴를 종용하고, 현장에서 각 공정의 상급자들이 기업별노조 가입을 종용한 결과였다. 해당 지회는 대처할 수 없었다. 현장에서 상급자의 종용을 산별노조 지회가 막아 낼 방법이 다양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해당 지회는 교섭대표노조가 되지 못했다. 당연히 교섭권이 없다. 반면 예상했던 것처럼 기업별노조의 교섭은 원만하지 못하다. 강력한 산별노조의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고 교섭 전략을 오래 고민하지 않은 기업별노조의 교섭력이 크지 않은 것은, 솔직하게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사용자의 현황 때문에 지금 이뤄지는 교섭이 매우 중요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해당 지회는 지금 긴 싸움을 하고 있다. 싸움이 길어지면서 쟁점도 늘어났다. 법원에서 다투고 있는 쟁점도 있고, 현장에서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쟁점도 있다. 소수노조가 힘들다는 것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굳건히 싸우고 있는 조합원들의 밝은 얼굴에 고생의 흔적이 쌓여 가는 것을 보는 것은 아픈 일이다.

같은 산별노조 산하의 다른 지회는 다른 일로 고민 중이다. 이곳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투쟁을 한참 진행 중이다. 비정규직 투쟁이 스스로의 역량이 아니라, 법원이나 고용노동부의 판단에 의해 ‘완전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고 이 점은 이 지회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싸워 온 덕에 어느 정도 성과를 냈고 그 성과가 현장에서 피부로 느껴질 날이 눈앞에 와 있다. 사업장 내의 유일노조로 활동해 오던 어느 날, 갑자기 다른 노조가 생겼다.

창구단일화 문제만 아니라면 새로운 노조가 생기는 것이 두려울 일은 아니다. 교섭을 잘 해서 다른 노조보다 좋은 단협을 맺으면 그것으로써 힘과 우수한 전략을 가지고 있음이 증명되고 조직률은 유지되거나 상승할 것이다. 그러나 법은 창구단일화 제도를 두고 있고, 법원은 유일 노조의 경우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쳤다고 하더라도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가질 수 없다고 판단했다. 교섭을 통해 우수함을 판단받을 기회조차 없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지회는 교섭대표노조의 지위가 불안정해질까 봐 모든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픈 일은 같은 동료를 사측의 입김이 닿은 어용 조합원이 아닐까 계속 의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위한 창구단일화인가?

노동자들은 단체협약을 맺을 즈음이면 언제나 이런 일을 겪어야 한다. 위 사례들은 사용자가 창구단일화 절차 중에 개입할 여지가 얼마나 많은지, 노동자들이 서로 갈등을 겪게 될 소지가 얼마나 많은지 보여주고 있다. 교섭 과정에서 사용자에게 개입할 여지를 열어 주고, 노동자들이 서로를 비난해야 하며, 노동자들이 복잡한 절차 안에서 길을 잃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창구단일화 절차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답은 사용자를 위해서다.

제도는 복수노조를 허용하면서 사용자가 두 개 이상의 교섭에 임하면 번거로울까 한 번만 교섭에 참여할 수 있도록 창구단일화 절차를 마련해 주고 있다. 혹시라도 사용자와 친한 노조가 소수노조일 경우까지도 생각해 사용자가 개별교섭을 결정할 수 있게 했다. 노조는 교섭권을 두고 경쟁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를 헐뜯게 됐다. 노조 간 갈등으로 이익을 얻게 되는 쪽 역시 사용자다. 애초 제도가 사용자 편의를 위해 설계된 것이다.

공정대표의무가 창구단일화를 완성하는가?

더 재미있는 것은, 흔히 이 제도를 ‘완성’시킨다고 인식하는 것이 공정대표의무라는 점이다. 사건을 통해 만났던 누군가는 필자에게 ‘소수노조라고 하더라도 무슨 문제인가. 공정대표의무가 있지 않은가. 교섭대표노조가 공정하게 교섭을 진행할 것이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맞다. 그런 의무가 있다. 그런데 창구단일화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을 대로 받은 노동조합에 그 의무가 지워졌다는 것에 문제가 있고, 상대방 노조가 무언가를 가져가면 우리 노조가 무언가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관계에 있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애초 서로 공정하게 대표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닌 것이다. 공정하게 대표할 관계도 아니고, 그럴 마음도 없는 노조에게 ‘공정한 대표’를 주문한 덕분에, 무엇이 공정대표의무인가를 두고 복수노조 사업장 노조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매번 법원에서 치열하게 다툰다. 이게 무슨 사회적 낭비인가.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오늘도 노동자들은 복잡한 창구단일화 제도 속에서 헤매고 있다. 언제까지 사용자만을 위해 이 복잡하고 쓸모없는 짓을 해야 하는가. 창구단일화 제도는 즉시 폐기해야 하고, 모든 노동조합에 교섭권을 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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