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전학을 두 번 갔다. 엄마가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는데 그 시절엔 돌봄교실이라는 것이 없어 엄마는 수업이 끝난 나를 교실 끄트머리에 앉혀라도 놓으실 요량으로 본인이 새 학교로 전근발령을 받으시면 나도 같이 전학을 시키셨다. 전학 가는 게 너무 싫었는데, 당연히도 잘 다져 놓은 내 탄탄한 인맥을 버리고 새 판을 다시 짜야 하는 것이 꽤나 큰 스트레스였기 때문이다. 어린 마음에 엄마는 만날 저렇게 학교를 옮기면서 별로 힘들어하지 않으시는데, 내가 이렇게 힘든 건 아직 어린이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엄청난 착각이었다. 나이가 들면 환경을 바꾸는 것이 더 힘들다는 사실을 어른이 되고 2년마다 전셋집을 알아봐야 하는 처지에 놓이고서야 알게 됐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한다. 변화에 잘 적응하는 사람도 있지만 본능적으로 새로움과 낯섦을 익숙한 것으로 바꾸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된다. 적응하지 못하고 바뀐 장소를 떠나는 경우도 있다. 추측건대 아마도 이래서 근로기준법이 근로계약서에 반드시 명시해야 할 근로조건 중 하나로 근무장소와 담당업무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많은 사람이 최초 입사를 하면 승진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같은 곳에서 같은 업무를 계속하게 되리라 생각할 것이다. 근로계약서에 여기서 내가 뭘 하는지 적어 놓았으니까, 내가 어디서 뭘 할지는 거의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내심 믿는다. 그리 믿는다면 지금이라도 근로계약서를 찾아서 근무장소와 담당업무 부분을 확인해 보기 바란다. 혹시나 ‘회사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이라거나 ‘경영상 필요에 의해 재배치될 수 있음’ 등의 단서가 붙지는 않았는지. 십중팔구는 그런 조건이 붙어 있다. 그리고 회사는 필요할 때 그 단서조항을 적극 활용한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건데 업무 장소나 하는 일이 좀 바뀌는 게 어떠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요즘 분위기를 보면 이게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다. 예전엔 경기가 안 좋으니 대놓고 나가라고 한다거나, 희망퇴직을 받겠다고 하며 인력을 감축했다. 요새는 이렇게 안 한다. 절대로 인력감축을 목표에 두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지 않고, 하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을 그만두도록 할 수 있는데 대놓고 나가라고 하는 건 너무 촌스러운 방법이다. 어떻게? 대전에서 일하던 사람을 의정부로 발령 낸다거나 평생 전산관리를 하던 사람에게 갑자기 매장관리를 맡긴다거나 10년 넘게 지점장으로 매장 관리를 하던 사람에게 업무 역량을 향상시키라며 영업을 뛰라고 시키면 된다. 이 모든 것은 회사의 경영상 필요에 의한 것이고, 잘만 하면 근로자 직무 능력도 다방면으로 향상되니 이보다 좋은 상생의 인사조치는 없다고 말한다. 좋은 말로 치장했지만 턱도 없는 소리다. 다 나가라는 소리다.
이런 일이 기존엔 얼마나 자주, 많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변호사가 되고 나서 회사 전환배치가 사실상 퇴사를 종용하는 것으로 위법하다고 다툰 사건이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이런 문제로 상담을 받지 않는 단위노조가 없을 정도로 전환배치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유야 다양할 것이다. 코로나19로 경기가 나빠져서, 신기술 도입으로 사람이 필요 없어져서, 오프라인 매장을 점점 축소하고 있어서. 얘기만 들어보면 다 납득이 가고 이해가 가는 이유이긴 한데 달리 생각해 보면 그 설명에 노동자가 겪게 되는 생활상 불이익, 쉽게 말해 내가 어릴 적 겪었던 다른 데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회사 사정만이 담겨 있다.
법원은 기본적으로 인사발령을 사용자의 인사 재량권 행사로 본다. 다만 해당 인사발령은 사용자의 경영상 필요성이 인정돼야 하고, 해당 경영상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만한 적합한 수단으로 이뤄졌어야 한다고 본다. 이 과정에서 근로자와 성실한 사전 협의가 이뤄져야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는 있으나, 협의가 없었다고 해서 인사발령을 곧바로 위법하다고 보지는 않고 있다. 근로자의 생활상 불이익도 고려하고는 있으나 금전적인 불이익이나 말도 안 되는 통근거리 외에 심리적 압박감이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은 인사발령 위법성 판단에서 주된 요인으로 고려되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 전학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겪었던 나로서는 법원의 이런 태도가 불합리하다고 느껴진다. 아무리 근로계약 관계가 다른 민사상 계약관계와 달리 당사자 사이가 한쪽으로 기울어진 관계임을 감안하더라도 이렇게까지 인사발령권자의 이해관계만 충실히 고려한단 말인가. 아니, 오히려 한쪽으로 기울어진 관계를 고려한다면 사용자의 한마디에 당장 오늘 근무했던 자리를 빼고 내일 당장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일하러 가야 하는 사람의 처지를 더 이해해 줘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이런 불이익은 ‘불이익’ 취급도 받지 못한 채, 많은 노동자는 오늘도 인사발령을 받아 자리를 옮기거나 아예 회사를 그만두는 결정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인사발령의 정당성을 판단할 때, 조금이라도 노동자들이 겪게 될 심리적 괴로움을 이해해 주기 바라며 최근 회사의 일방적인 폐점 결정으로 오랜 시간 일한 일터를 잃게 된 홈플러스 조합원의 서신으로 글을 마무리 짓는다.
“회사의 일방적 폐점 통보로 직원들은 매우 분노하고 있습니다. 폐점 통보에 이은 전환배치 또한 직원들의 의사를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것은 직원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중략) 회사 사정으로 진행되는 폐점으로 인한 피해를 직원들에게 전가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행동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을 수 있습니다. 회사는 각종 언론사에 고용을 보장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진행되는 전환배치 절차를 보면 고용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에게 퇴사하라고 종용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