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2010년대 중반 이후 조직된 사내하청노동의 경우에는 ‘정규직화’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임금·단체협약을 통한 노동시장 조건 개선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그는 평가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현대모비스·현대제철 등 상대적으로 대규모로 조직된 사내하청 노동자의 경우에는 임단협을 통한 사내하청 노동자의 처우개선에 주력하는 양상”이며 “원청 사용자성 제도화의 한계로 인해 두드러진 성과로 이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금속노조 전략조직화 사업을 배경으로 지속적인 조직확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4일 오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비정규직위원회 회의에서 ‘사내하청 비정규직 실태와 개선 과제’에 관해서 발표하면서 발제자인 손정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렇게 사내하청에 관한 최근 노조 투쟁전략을 진단했다. 과연 그런가. 발표를 듣고 있던 나는 의문을 던지며 그 발제 부분에 밑줄을 긋고 물음표를 달았다. 금속노조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가 아니라 처우개선으로 투쟁 방향을 틀었다는 것인가. 2000년대 초부터 현대차를 비롯한 이 나라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정규직 쟁취’가 주된 투쟁의 목표였다. 그런데 근래에는 그게 아니고 사내하청 노동자로서 고용보장과 임금 등 처우개선이라는 것인가. 그럼 사내하청 노동자의 투쟁 현장에서 오늘은 ‘비정규직 철폐’ 구호 없이, 그저 <비정규직 차별철폐가>만 울려 퍼지고 있다는 것인가. 갑자기 의문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2. ‘설마 그럴 리야’ 하면서도 나는 얼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현대모비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상담하고서 소장을 제출할 무렵이었다. 금속노조의 한 지역지부 간부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현대모비스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금속노조 사업을 담당하고 있었다. 현대모비스 충주공장에서 금속노조와 한국노총 금속노련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다투고 있었다. 원청 현대모비스를 상대로 파견근로를 주장해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한 것은 금속노조 소속 조합원들이 아니었다. 그는 현대모비스에서 사내하청을 금속노조로 조직하는 데 소송이 지장을 초래한다고 여기고 있었다. 자세히 말하지 않았어도 그동안 사내하청을 조직하기 위한 그의 노력과 고민이 충분히 전해졌다.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 시기부터 대전·충북지역 많은 노조투쟁에서 그가 얼마나 헌신해 왔는지를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의 고민이 진정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말했다. “원칙대로 주장해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그에게 말했다. ‘원칙대로 하다가 노조 조직화도, 처우개선도 하지 못한다면 뭐가 되는 것이냐’고, 그가 말은 하지 않았어도 나는 그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현장에서의 고민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원칙대로, 법대로 말했던 것인데 위와 같이 지난주 경사노위에서 ‘사내하청 비정규직 실태와 개선 과제’에 관한 발표에 또다시 사내하청 노동자를 위한 노조투쟁을 생각했다.

3. 사실 금속노조가 “정규직화를 목표로 하기보다는 임단협을 통한 사내하청 노동자의 처우개선에 주력”하는 것으로, 비정규직 투쟁의 목표를 바꿨을 거라고는 믿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발표자의 주관적인 평가일 거라고 믿고 있다. 발제문에서는 그 예로 현대모비스와 함께 현대제철을 들었지만, 현대제철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원청 현대제철을 상대로 불법파견,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해서 현재 법원에서 다투고 있다. 이미 2010년대 초 현대제철 순천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원청 현대제철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해 고등법원에서 승소하고서 피고 현대제철의 상고로 대법원 판결 선고를 기다리고 있고, 그 뒤 당진공장도 소송을 제기해서 다투고 있다. 그러니 현대제철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데, 현대모비스를 제외하고 정규직화를 목표로 하지 않고 사내하청 노동자로서 처우개선에 주력하고 있는 사업장들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발제자가 타당하게 평가한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정규직화를 위해서 소송 등 법적투쟁과 노사합의를 한 현대자동차·기아 등은 아니고, 역시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한국지엠 등도 아니다. 그렇다면 대규모로 사내하청 노동자를 조직한 사업장 중에 어디가 정규직화가 아닌 처우개선에 주력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 머리에서는 떠오르는 게 없다. ‘혹시 조선사업장일까’ 생각해 보지만, 자동차사업장처럼 사내하청 노동자를 대규모로 조직하고 있지 못하니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생각을 해 봐도, 대규모로 사내하청 노동자를 조직한 사례 중에서 정규직화가 아니라 임단협 등 처우개선을 목표로 해서 투쟁하는 사업장은 현대모비스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니 현대모비스 사례만으로 금속노조가 투쟁의 목표를 바꿨다고 나는 평가하고 싶지 않다.

4. 단순히 사내하청 노동자를 조직하는 데는 처우개선에 주력하는 것이 나을 수가 있다. 원청을 상대로 하는 정규직화 투쟁은 오랜 기간의 지난한 길을 걸어야 하고, 당장 원청을 상대로 해서는 임금인상 등 임단투도 보장이 안 되니, 노조로서 조합원을 위한 최소한의 투쟁도 보장받기가 쉽지 않다. 이는 지난 20여년 동안의 금속노조 비정규직투쟁사가 증명한다. 사내하청업체를 상대로 해서 사내하청 노동자의 처우개선을 위한 임단투에 주력한다면, 법적으로 노조로서 교섭과 쟁의를 하는 걸 보장받으니 활동하는 데 커다란 장애가 없다. 그래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수월하게 노조로 조직할 수가 있을 테니, 노조 조직화에 유리한 것이라고 여길 수가 있다. ‘정규직화냐 처우개선이냐’란 물음에 대해서는 이렇게 조직화를 위한 필요로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수백·수천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를 조직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대규모로 노조에 가입시켰으니 노조 조직화에 성공했노라고 만세를 부르고 말 것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결국 사내하청 노동자인 조합원이 바라는 걸 쟁취하기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사내하청업체를 상대로 한 임단투를 하는 한 원청 자본의 대대적인 탄압을 피할 수 있어 더 쉽게 조직을 보존할 수 있겠다. 하지만 결국은 조직을 보존하기 쉽지 않아도 조합원이 바라는 정규직화를 위한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규직화냐 처우개선이냐’는 물음에 결국은 정규직화라고 대답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대답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원칙대로 조직해서 투쟁할 일이 아닐까.

5. 이에 대해서 ‘그 사내하청이 법원에서 불법파견으로 인정될 걸 장담할 수 없는 것 아니겠냐’고, ‘현대차 등과는 달리 생산공정을 통째로 사내하청으로 해 놓아서 인정받기 어려운 것이 아니겠냐’며 정규직화에 주력하는 투쟁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원칙대로만 고집할 일은 아니라고 내게 말할 수도 있겠다. 내게 연락을 했던 노조간부도 이런 말을 했었다. 어떻게 법원의 판단을 장담하겠는가. 수도 없이 내가 말해 왔던 바로 그것, 이 나라에서 사내하청의 존재이유를 가지고 주장하고 주장할 따름이다. 원청 사업주를 위해 노동자를 제공하는데 이 나라 사내하청의 존재이유가 있는 것이니, 노동자의 대리인으로서 나는 이를 주장하고 입증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하는 것이고, 사내하청 노동자인 조합원을 위한 노조로서는 정규직 쟁취를 위해 투쟁할 일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이렇게 끄적거리고 보니 어디까지나 내 노파심에 지나지 않는 것 아닐까 생각이 든다. 너무도 당연한 비정규직 투쟁의 목표 ‘비정규직 철폐, 정규직 쟁취’는 의문 없이 이 나라에서 노조의 투쟁 목표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칼럼을 쓰고 있는데 김 과장이 와서는 사내하청 노동자 둘이 소송 취하서를 제출했다고 말을 하고 갔다. 얼마 전에는 원청 서진캠을 상대로 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대거 소취하서를 제출해서 그 소송을 추진했던 노조와 원고 소송대리인인 우리 사무소가 시끄러웠다. 노동자로서 권리를 주장하기도 쉽지 않다. 지난주 경사노위에 참석했던 노조간부도 원청이 사내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해지하거나 갱신해 주지 않아 해고되는 걸 감수하기가 어렵다고, 제도적 방법이 없냐고 내게 물었다. 분명히 노동자로서 파견법에 따라 법적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이라서 원청을 상대로 불법파견,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해서 다투는 것임에도 그 주장에 관해서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것이다. 개별적으로 사내하청 노동자가 원청 사업주를 상대로 법적으로 다툰다는 것이 이 나라에서는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노조가 노동자들이 온전히 법적 주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관심을 두고서 지원해야 한다. 현대차·기아·현대제철·한국지엠·한국도로공사 등 지금까지 이 나라에서 비정규 노동자의 법적 주장은 대부분 이런 노조가 있었기에 법원의 판결을 받아 낼 수 있었다. ‘정규직화냐 처우개선이냐’로 고민하지 않고 정규직화를 위해서 투쟁하고 지원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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