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선아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코로나19 확산으로 실업 위험 등에서 사회적 취약계층을 보호할 필요성이 거듭 확인되면서 지난해와 올해 초 고용보험 확대적용을 위한 고용보험법 개정이 이뤄졌다. 지난해 6월9일에는 예술인에 대해, 올해 1월5일에는 시행령에서 정하는 일정 직종의 노무제공자(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해 고용보험을 확대 적용할 수 있는 규정이 고용보험법에 신설됐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전 국민 고용보험제 도입을 선언하며 로드맵을 발표하기도 했다. 여전히 일부 직종만이 그 확대 적용 대상이고,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와 달리 구직급여 및 출산전후휴가급여에 국한해 적용되는 등 그 한계가 명백하다. 하지만 그간 근기법상 노동자성이 부정돼 사회보험 적용이 배제되던 예술인이나 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해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라도 제공하며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일부 해소한다는 측면에서 나름 반가운 소식임은 분명했다.

그러나 근로관계 실질에 따르면 근기법상 노동자로 인정돼야 함에도 자영인이나 프리랜서로 그 고용관계가 위장돼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마냥 달가워할 수만은 없었다. 개정된 고용보험법은 예술인과 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해 근기법상 노동자가 아님을 전제로 ‘근로자가 아니면서’라는 문구가 명시된 특례규정 신설(법 77조의2 1항, 77조의6 1항) 방식으로 고용보험을 확대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개정된 특례규정에 따라 고용보험 가입을 진행하기 위해 사용자들이 내민 계약서들 상당수에서는 해당 계약 당사자가 노동자가 아니라고 명시하고 있었다. 나아가 향후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는 내용 등도 다수 포함하고 있었다. 고용보험 확대적용 소식에 대한 기쁨도 잠시, 사용자가 내민 저런 계약서에 그냥 서명해도 되냐는 상담들이 이어졌다.

필자는 제대로 된 답변을 하기 어려웠다.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혜택조차 받지 못할 위험을 감수하며 마냥 계약서 서명을 거부하라고 권할 수도 없었고, 위장된 외관을 강화하는 데 악용될 소지도 있는 위 계약서에 서명하고 고용보험 혜택이라도 받으라고 권할 수도 없었다. 사실 확립된 법리는 근기법상 노동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계약 형식이 아니라 근로관계 실질에 따라 판단하고 있다. 사회보장제도에서 노동자로 인정하는지 여부를 주요하게 고려하고 있지는 않고 있다. 따라서 법리상으로만 보자면 사용자가 우월한 지위에서 내민 위 계약서에 서명하고, 그 계약 형식에 근거해 ‘근로자가 아닌’ 예술인 또는 특수고용 노동자로서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노동자성을 쉽게 부정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정이 아닌 현실은 다를 수 있다. 사용자들은 그 근로관계 실질이 노동자에 해당하는 경우에도 위 특례 규정에 따른 보험가입을 근거로, 그리고 위와 같은 계약서 작성을 강제하는 등의 방법으로 노동자성 부정의 외관을 만들며 탈법수단으로 얼마든지 남용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위와 같은 고민을 하던 노동자들 중 일부는 사용자가 내민 계약서에 서명을 거부하고, 고용보험 가입을 포기하기도 했다.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보장과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라는 입법 취지에도, 특례규정상의 ‘근로자가 아니면서’라는 문구와 그에 근거해 활용되고 있는 사용자들의 계약서들은 사실상 노동자들에게 근기법 등에 의한 권리보장과 고용보험 적용에 따른 보호 사이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 다시금 사회안전망 밖에 노동자들을 방치하는 결과를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고용보험법은 고용보험 가입시 근로관계의 실질을 판단해 그 실질에 부합하게 보험 가입을 하게 하는 절차를 마련하고 있지도 않다. 근로계약·문화용역계약·노무제공계약 등 사실상 사용자가 우월한 지위에서 정할 수 있는 계약형식을 기준으로 고용보험 가입 지위가 결정되도록 운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예술인과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고용보험법 특례규정에서는 그 실질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근로자가 아니면서’라는 문구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법원의 ‘근로관계 실질’에 따른 노동자성 판단 법리에도 전혀 부합하지 내용으로서 반드시 삭제될 필요가 있다.

노동자로서의 권리 포기를 강요하는 내용의 계약서에 서명을 거부하고, 고용보험 가입 포기를 선택한 노동자들의 권리찾기 싸움이 언제 끝날지는 쉽게 예측되지 않는다. 긴 시간이 걸릴 수 있고, 그 기간 내내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보호도 없이 싸움을 이어 가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최소한의 사회보호를 받아야 한다.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고용보험 사각지대의 해소라는 고용보험법 개정취지에 부합하도록 앞서 지적한 문제점들은 시급히 재검토되고 개선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근로자와 근로자 아닌 자로 고용보험 가입 체계를 구분하려면 최소한 근로관계 실질을 판단해 가입하게 하는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이와 함께 근로관계 실질에 부합하지 않는 계약 형식을 적용하며 고용보험 가입을 하는 사업주를 제재할 수 있는 방안 등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그 고용형태를 구분하지 않고 모든 일하는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고용보험 체계를 구상해야 한다. 고용보험은 최소한의 사회보호 조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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