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이 임금을 안 주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 월급 줄 형편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당장 생계가 막막합니다. 지금 그만두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을까요?”
임금체불을 상담하는 피해노동자의 목소리는 절박했다.
“월급이 밀린 지 얼마나 됐나요?” 필자의 질문에 피해 노동자는 “한 달 반 정도 돼 간다”고 답했다. 보름 정도 더 기다렸는데도 월급이 지급되지 않으면 그때 고용노동부에 가서 신고하고, 그 후 고용센터에서 실업급여를 신청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건조한 나의 답변에 피해 노동자는 황당해하며 말했다.
“당장 생활비가 급한데 언제 줄지도 모르는 사장 밑에서 보름을 더 일하라고요?”
실업급여의 정식 명칭은 ‘구직급여’다. 고용보험법에 따라 해고나 권고사직처럼 비자발적으로 이직한 실직자에게 취업활동을 조건으로 지급한다. 그러나 현행 고용보험법 시행규칙에 따라 자발적으로 이직한 경우라도 구직급여를 지급하는 경우가 있다. 사용자가 임금을 체불하거나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지급하는 경우, 연장근로 한도를 위반해 연장근로를 시킨 경우, 그리고 기존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해 임금이 20% 이상 깎이는 경우에는 노동자가 스스로 퇴사하더라도 구직급여를 준다. 스스로 그만뒀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보고 실직에 따른 경제적 지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요건이 매우 까다롭다. 노동자가 이직 하기 전 1년 동안 사용자가 2개월 이상 임금을 체불하거나, 최저임금을 위반하거나, 연장근로 한도를 위반해야 한다. 임금을 체불하거나 최저임금보다 적게 월급을 주는 행위는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위반으로 형사 처벌 대상이다.
근로기준법 43조는 매월 1회 이상 일정한 날짜를 정해 임금을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또한 최저임금법 6조에 따르면 사용자가 최저임금법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에게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하도록 정하고 있고,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런데 사용자의 범죄행위가 발생했는데도 2개월 이상 지속해야 실업급여를 준다고 하니 경제적으로 궁핍한 피해노동자 입장에서는 황당할 노릇이다. 상담사례를 보면 결국 두 가지 선택으로 귀결된다.
하나는 사용자의 법 위반 행위를 알고도 참고 2개월을 채워 퇴사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피해노동자가 헌법과 근로기준법이 금지한 강제근로를 하게 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진다. 물론 실업급여를 포기하고 회사를 때려치우는 방법도 있다. 이때 피해노동자는 자기 책임이 아닌 이유로 실업의 위기에 처하고도 고용보험 혜택을 보지 못하는 모순된 상황에 빠진다.
임금체불 상담건은 대부분 수개월 이상 임금이 밀리는 악성 체불 사안이다. 노동자들이 쉽사리 이런 사업장을 벗어나 새로운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이유는 경제적 궁핍 때문이다. 체불사업장 노동자들은 경제적 대안이 마땅치 않아 해당 사업장에서 버티다 보니 임금체불이 장기화하는 악순환이 반복한다. 체불액도 문제지만 정당한 권리를 훼손당했다는 절망감은 이후 경제활동에 정신적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결국 어찌어찌 해당 사업장을 벗어나더라도 경제적 궁핍으로 적절한 진로탐색을 하지 못하고 비정규직에 저임금 일자리로 돌아가기 쉽다.
이들이 적절하고 손쉽게 실업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조금은 홀가분하게 체불 사업장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시급하게 ‘이직 전 1년 이내에 2개월 이상 임금체불과, 최저임금 위반이 발생’해야 실업인정을 해주도록 정한 고용보험법 시행규칙을 개정해야 한다. 임금체불과 최저임금법 위반 행위가 1회 이상 발생시, 이를 이유로 즉시 근로계약을 해지한 자발적 이직자에게도 실업인정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정부가 걱정하는 고용보험기금 지출 증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는 체불 사업주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일정부분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열심히 일한 노동자가 무슨 죄인가?
한국노총 부천노동상담소 상담부장 (leeseyha@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