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이 ‘한칼’ 공모전을 마무리했다.
공모나 배틀 방식으로 뭘 뽑는 프로그램 형식이 유행하면서, 이젠 TV만 켜면 여기도 저기도 온통 트로트 노래만 나온다. 방송사 PD들은 뭐 하는 인간들인지, 이렇게 획일화한 포맷으로 먹고산다. 지겹다.
자사 지면에 실릴 칼럼니스트를 공모하는 것부터 신선했다. 물론 여기서도 포퓰리즘의 위험은 도사리고 있지만, 강호의 숨은 고수를 발굴할 좋은 기회다.
우리 언론은 숨어 있는 좋은 글쟁이를 발굴해 재미를 많이 봤다.
54년에 창간한 신생 한국일보는 2년 뒤 23살 서울대생의 ‘우상의 파괴’라는 글을 지면에 실어 이어령을 발굴했다. 당시 이어령은 이승만이라는 절대선에 도전했다. 덕분에 이어령은 약관 20대에 한국일보 논설위원이란 파격적 대우를 받았다.
사학계의 이단아 혹은 정조 예찬론자라는 극단의 평가를 받는 역사학자 이덕일도, 일찍이 조선일보가 발굴해 한국일보로 옮겨 갔다.
21세기 들어 외부 필진은 자기 정치의 도구로 언론 지면을 활용했다. 대표 사례가 이번에 청와대 대변인으로 뽑힌 박경미 교수다. 박 교수는 ‘수학교육’이란 이색적인 학문을 무기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필진을 오가다가 경향신문에서도 고정 필자를 맡았다. 그러나 글의 내용은 평범하기 그지없다.
그가 경향신문에 쓴 맨 마지막 칼럼은 제목이 ‘뫼비우스의 띠와 유권자의 선택’이다. 2016년 3월14일 지면에 실렸으니, 그가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1번을 받고 국회의원에 당선된 20대 총선일(4월13일)로부터 불과 한 달 전이다. 총선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신문에 자기 얼굴 내밀고 “총선을 앞둔 정치의 계절”이니 “(계층 간 통합)의 세상으로 이끄는 후보를 선택할 혜안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건 칼럼이라기보다 지면을 통한 선거운동이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김종인이었고, 그 김종인이 그를 비례대표 1번에 앉혔다.
다시 ‘한칼’로 돌아가자. 한겨레는 4월19일자 22면에 한칼 공모전 결과를 한 면 모두 털어 소개했다. 감동이었다. 최종 선정된 개인 5명과 단체 4팀 19명 등 모두 24명 가운데 여성이 월등히 많았다.
더 큰 감동은 나이였다. 요즘 논문 때문에 주요 일간신문에 등장하는 취재원 또는 필자들 나이를 분석해 보니 55세가 훌쩍 넘었다. 그러나 한칼에 선정된 이들은 대부분 2030세대였다. 최종 선정된 24명의 평균 나이는 34.7세다. 엄마와 아들의 ‘귀농서신’으로 응모한 63살 어머니가 유일한 60대다.
혹자는 여성이, 2030이 과대 대표됐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45년 해방 이후 한 세기 가까이 50대 이상이 줄곧 과대 대표돼 왔다. 바로 잡으려면 이보다 더한 역편향이 필요하다. 옛 소련이 성별 임금을 격차를 줄이려고 혁명 초기에 여성 의사에게 남성 의사보다 20% 더 임금을 줬다는 기록도 있다.
한겨레가 예전 같지 않다고 여기저기서 비판하는 이들이 많다. 나 역시 그렇다. 그래도 이번 한칼 공모전만큼은 ‘역시 한겨레’라는 소릴 듣기에 충분하다.
아쉬운 점이 딱 하나 있다. 선정된 칼럼니스트 가운데 10대가 아무도 없다. 65년 전 한국일보가 23살의 대학생을 발굴했듯이, 10대의 도발적인 글을 한겨레에서 보면 더 좋겠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