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하면서 플랫폼 종사자는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나, 취업형태 및 유형이 다양하고 유형별로 실태가 상이해 현재의 노동법이나 사회보험 체계로는 충분한 보호에 한계가 있다.”

지난 12월21일 고용노동부 장관이 ‘플랫폼 종사자 보호 대책’을 발표하면서 서두에 밝힌 내용이다. 보호 대책의 일환으로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일거리를 얻는 사람을 노동법의 ‘근로자’로 보지 않는 것을 전제로 노동법적 보호가 아니라 공정한 계약관계에 관련된 몇 가지 보호를 제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06년 노무현 정부에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대책’을 내놓았을 때도 “근로자개념 확대, 노동 3권 보장 등 노동관계법을 통한 보호방안은 노사 간 견해차가 커 대책에 포함하지 않았다”고 했다. 2011년 이명박 정부에서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때도 “사내하도급은 개별 기업 간의 민사상 계약관계이므로 노동관계 법률로 규율하는 것에 대해 논란에서 벗어나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및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도모하겠다”고 했다.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가사서비스 이용 촉진 및 종사자 고용촉진을 위한 제도화 방안’을 발표할 때도 “가사노동자의 노동 양태가 노동법의 틀에 맞지 않는 점을 고려해” 근로기준법 적용제외 규정은 그대로 둔 채 가사서비스 제공기관(파견업체)을 설립하도록 하는 특별법안을 만들었다.

노동관계의 기본법이라 할 근로기준법은 전쟁 중인 1953년 제정된 이후 지금까지 기본 틀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 제정 근로기준법이 총 115개 조항인데 현행 근로기준법이 116개 조항인 점만 보아도 얼마나 낡은 틀인지 알 수 있다. 임금노동자의 규모가 1955년 52만명에서 2020년 2천만명으로 40배 이상 늘고, 기간제·시간제·파견·용역·호출노동·특수고용 등 고용형태가 극히 다양화됐음에도 우리 노동법 시계는 과거에 멈춰 있는 것이다.

노동법이 낡은 틀에 머물러 있는 동안 자본은 그 종이호랑이마저 피하고자 다양한 법의 사각지대를 만들어 왔다. 정부는 변화하는 노동현실에 맞게 노동법을 현대화하는 대신 불법적·불안정한 노동형태를 법적으로 정당화해 주는 예외 규정, 특별법을 양산했다. 이제 디지털 경제와 코로나19 팬데믹 같은 급격한 노동환경 변화를 겪으면서 우리 노동법의 실패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노동법의 실패’에 대한 대응에서 각국이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15년 미국 연방노동관계위원회는 원청을 노동조합의 상대방인 사용자로 인정하면서 “1990년부터 2008년 사이에 용역노동자들이 110만명에서 230만명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위원회가 현재의 사용자 법리를 재검토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위원회의 일차적 기능과 책임은 노동법 조항들을 복잡한 산업현실에 맞도록 적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갈파했다. 1973년 법 개정으로 ‘유사 근로자’라는 범주를 만든 후 위장자영인의 급증과 폐단을 경험한 이탈리아는 2015년 법 개정으로 고용상 지위와 관계없이 플랫폼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법이 적용되도록 했다. 또한 노동형태에 따라 노동법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단체협약으로 정한 경우 이에 따르도록 했다.

현실에서 쓸모가 없는 노동법의 변화를 추동했던 것은 언제나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이었다. 오늘날 노동법의 실패를 넘어서기 위한 힘도 역시 노동운동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오는 세계노동절 전야에 민주노총 법률원 부설 노동자권리연구소가 출범한다.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을 지원·연대하며 낡은 법의 틀을 넘어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실현하는 데 복무할 것이다. 30일 개소기념 토론회에서 국제노동법률가네트워크(ILAW), 유럽노총 부설연구소(ETUI) 대표자, 국제노동기구(ILO) 전문가 등과 함께 “노동법을 모든 노동자에게”라는 주제로 온라인 토론회도 개최한다. 근로계약관계를 따지지 않고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 3권, 적정한 보수, 안전·보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벌이고 있는 국제적 노력들을 교류하고 노동법 혁신을 고민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노동자권리연구소 출범에 많은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린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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