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자회사 노동자들이 필수유지업무제 때문에 노동조건 개선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제도를 시행 후 2008년부터 2018년까지 노동위원회가 필수유지업무 유지율을 결정한 건수는 97건이었는데, 이 중 41건이 2018년 한 해에 발생했다. 단체교섭으로 노동조건 개선을 합의하지 못해 단체행동을 준비한 노조가 많았다는 의미다. 노동위가 유지율을 제때 결정하지 못해 파업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나 필수유지업무제 전반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8년까지 노동위 처리 98건
41건이 ‘공공부문 정규직화’ 후인 2018년 발생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강은미 정의당 의원과 공공운수노조·희망연대노조·대한민국조종사노조연맹은 필수유지업무제 개선 방안 마련을 주제로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토론회를 개최했다. 지난해 노동계와 전문가들이 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개선책을 모색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라 필수공익사업에 속한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노동위원회 조정 절차를 거쳐도 곧바로 파업할 수 없다. 파업시 유지해야 할 필수유지업무 유지율만큼의 인력을 남겨 둬야 하기 때문이다. 노사는 필수유지업무 협정을 자율적으로 체결하거나, 협정을 체결하지 못하면 노동위 조정을 거쳐 유지율을 결정한다. 필수유지업무제도는 필수공익사업에서의 단체행동권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던 직권중재제도를 폐기하고 2008년부터 시행됐다.
발제를 맡은 신수정 경제사회노동위원 전문위원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8년까지 노동위가 필수유지업무 유지율을 결정한 경우는 모두 98건이다. 2017년까지 누적해 57건을 처리했는데, 2018년 한 해에만 41건을 추가했다. 공공부문의 필수유지업무 외주화로 증가한 비정규직이 2018년 정규직 전환 정책으로 자회사로 편입하면서 노동위 결정 건수도 증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필수유지업무제는 파업 불참 인원을 남겨 두는 것이어서 본질적으로 단체행동권을 제약한다는 지적이 높다. 그런데 노동위 조정이라는 절차는 단체행동 시기까지 제약한다. 2019년 엘지유플러스 통신망 관리업무를 하던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꾸린 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한마음지부는 파업을 위해 서울지노위에 필수유지업무 유지율 결정 신청을 했는데 2달이나 지나서야 결과가 나왔다. 공공운수노조 서해선지부는 경기지노위의 유지율 결정 기간이 늘어져 예고한 파업을 철회하기도 했다. KAC공항서비스㈜의 3개 노조는 신청 3개월이 지나도록 결정 답변을 받지 못했다. 신 전문위원은 “노동위가 필수유지업무 결정을 지연하면서 노조의 파업을 방해하는 문제가 발생했다”며 “필수유지업무제는 대체근로를 허용해 노조의 교섭력을 약화해 파업 장기화를 유도하는 등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필수유지업무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 것은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개선방안 모색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전혀 없다. 문무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발제에서 “정부의 집단적 노사관계법·제도 보완작업을 위해 조직된 전문가 연구위원회의 최종 연구결과 보고서에서 필수유지업무 관련 논의는 장기적 검토과제로 분류되고 말았고, 최근 이뤄진 노조법 개정에도 포함되지 않았다”며 “기대했던 현 정부조차 노동계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노조 활동가 등은 깊은 실망감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제도개선 안 한 문재인 정부에 실망,
노동위 업무 개선·노조법 개정 필요”
문 교수는 단체행동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제도개선 방안으로 노동위원회 업무 매뉴얼과 노조법 개정 두 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필수유지업무 결정시 유지율의 상한선을 설정하고, 이미 결정한 유지율도 사회 변화에 따라 재조정할 수 있도록 하자고 주문했다. 사용자가 경제적 이익을 위해 필수유지업무제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노조법에 필수공익사업 개념을 새로 정립하고, 대체근로 금지를 명시하자고 주장했다.
정부측은 제도개선에 소극적이다. 김수진 고용노동부 노사관계법제과장은 “대체근로를 폐지하는 것보다는 사업별로 필수유지업무 유지율을 어느 수준으로 하는 것이 좋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며 “제도 시행 13년을 맞아 문제점과 개선책 등에 대해 노동부 내부적으로 고민하고, 경영계와 일반 국민 등의 목소리를 두루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성호 중앙노동위 조사과장은 “노동위 조정과정에 노사가 전문가를 추천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전문성을 키우고 신속성과 신중성이 조화를 이룰 방안이 무엇인지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