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회사의 업무시간 통제를 받고 고정급여를 받았던 웨딩플래너 7명이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아 퇴직금을 받게 됐다. 특히 이들은 웨딩업체에서 일을 시작할 때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는다는 취지의 계약서를 썼다.

대법원은 이런 계약서 형식보다 근무 때 업체의 지휘·감독을 받는 등 실제 노동 과정에 주목했다. 1·2·3심 법원 모두 웨딩플래너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로써 웨딩플래너 7명은 5천600만원의 퇴직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민유숙 대법관은 특수고용이란 이름으로 노사관계에서 은폐된 위장 자영업자를 가려내 줬다. 여성 대법관이 늘어난 덕분이란 생각도 든다.

세상이 발전할수록 다양한 고용형태가 속속 생기지만, 그냥 놔두면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는 신종 산업이 더 늘고 있다.

영국 대법원도 지난달 우버 운전기사를 우버에 고용된 노동자라고 판결했다. 우버는 지난 16일 미 증권거래위원회에 우버 운전기사 7만명을 노동자로 대우한다고 공시했다.

그동안 우버는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미안해요, 리키>처럼 운전기사를 끊임없이 자영업자라고 우겨 왔다. 버젓이 우버를 위해 일하는데 위장 자영업자가 돼 최저임금과 유급휴가·휴직수당·사회보험 등의 혜택 밖에 버려졌던 노동자에게 영국 대법원은 공민권을 안겨 줬다.

대법원 판결 한 달 만에 우버가 7만명의 고용을 책임지겠다고 태도를 바꾼 것도 신기하다. 전 세계 우버 운전기사 400만명에게 이번 판결이 뜻하는 바는 각별하다.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에서도 노조결성 움직임이 활발하다. 미국에서 노조결성은 사전에 투표를 통해 직원 가운데 일정 비율 이상이 동의해야 가능한데, 지금 아마존에선 노조 결성 투표가 한창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노조결성 투표에 협박·강요·반노조 선전이 있어선 안 된다”고 지지 영상을 보내기도 했다.

아마존의 노조결성 투표는 플랫폼기업엔 참사다. 주체할 수 없는 탐욕이 불러온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아마존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엄청난 수익을 챙겼지만 정작 자신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 처우개선은 외면했다. 늘어난 일감에 추가인력 투입은 최대한 자제했고, 코로나19에 감염된 직원을 일방 해고하거나 산재신청도 거부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의 플랫폼기업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선 한글과컴퓨터에도 노조가 17년 만에 재설립됐다. 한글과컴퓨터는 지난해 창사 이래 처음 4천억원대 매출을 달성했지만, 신사업을 추진한답시고 수석급 개발자 수십 명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했다.(한겨레 3월24일 10면) 회사의 일방적 행동에 한컴 직원들은 23일 민주노총 화학섬유식품노조에 가입했다.

전통적 공장 노동이 아닌 전 세계 곳곳의 기술혁신 기업에서 노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신사업으로 떼돈을 벌면서도 사용자 책임은 교묘히 회피해 온 탐욕에 항의하는 단체행동이다.

이 와중에 경기도가 퀵서비스 등 플랫폼 배달노동자에게 산재보험료 90%를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고마운 일이지만 지원 기간이 최장 1년밖에 안 돼 근본 대책은 아니다. 배달노동자의 노동으로 먹고사는 플랫폼 기업이 책임지도록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게 맞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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