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 시인

컴퓨터로 글을 쓰다 보면 낱말 아래 종종 붉은 줄이 쳐지는 걸 경험할 수 있다. 맞춤법이 틀렸거나 띄어쓰기가 잘못된 경우에는 그런 친절함에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어리둥절한 상태로 붉은 줄을 바라보게 된다. ‘여기에 왜 붉은 줄이 그어졌지? 잘못된 부분이 없는 것 같은데, 컴퓨터가 뭔 착각을 했나?’ 이런 생각을 하다가 뒤늦게 원인을 알아낼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자판으로 ‘넝쿨장미’를 쳤는데 그 아래 붉은 줄이 나타난 걸 보고 갸우뚱거리다가 국어사전을 찾아봤다.

넝쿨장미(--薔薇): <식물> ‘덩굴장미’의 북한어.

예전에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북한어로 분류한 낱말들을 실었다가 지금은 모두 <우리말샘>으로 옮겼고, 넝쿨장미도 <우리말샘>에 위와 같이 북한어로 올라 있다. 그전까지 나는 넝쿨장미가 표준어가 아니라는 생각 자체를 해 보지 않았다. 그건 내가 넝쿨장미라는 말을 꽤 많이 듣고 책에서 봤기 때문일 터였다. 지금도 검색해 보면 수많은 사람이 넝쿨장미라는 말을 쓰고 있다는 걸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넝쿨은 표준어로 인정하면서 넝쿨장미는 뜬금없이 북한말로 처리했을까? 아마도 식물명을 정하는 식물학자들이 넝쿨장미가 아니라 덩굴장미를 정식 명칭으로 삼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와 같은 경우가 꽤 많은데, 그러다 보니 언중들이 사용하는 일상 용어가 종종 국어사전 밖으로 밀려나곤 한다. 넝쿨장미도 표제어로 삼으면서, ‘덩굴장미를 달리 이르는 말’이라는 정도로 풀이하면 될 일이다. 그래야 국어사전과 실제 언어생활의 괴리를 메울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 사전에서는 어떻게 처리하고 있을까? 북한의 <조선어대사전>을 찾아봤더니 덩굴장미와 넝쿨장미를 포함해 줄장미까지 모두 동의어로 처리해서 표제어로 삼았다. 넝쿨장미만큼은 아니지만 줄장미라는 말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줄장미가 올라 있긴 하지만 비표준어로 처리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아무 죄도 없는 낱말들을 비표준어로 밀어내거나 심지어 북한말이라며 남북으로 가르는 건 횡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일각에서 표준어 규정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건 아닐 게다.

북한말로 규정한 낱말 중에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것들이 너무 많다. 몇 개만 예를 들어보자.

과일술 : ‘과실주’의 북한어.

나무공예(--工藝) : <공예> ‘목공예’의 북한어.

나무베기 : ‘벌목’의 북한어.

늦꽃 : ‘만화’의 북한어.

봄마중 : ‘봄맞이’의 북한어.

빙상장(氷上場) : <체육> ‘빙상 경기장’의 북한어.

씨앗고르기 : <농업> ‘선종’의 북한어.

지혜주머니(智慧---) : ‘지낭’의 북한어.

만화(晩花)·선종(選種)·지낭(智囊) 같은 어려운 한자어보다 늦꽃·씨앗고르기·지혜주머니 같은 말이 얼마나 부르기 좋고 쉬운가? 실제로 남한 사람들이 쓰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퍼드득은 퍼드덕의 북한어고, 꼬끼요는 꼬끼오의 북한어이며, 까욱은 까옥의 북한어라고 하는 데까지 이르면 어리둥절하기도 하다.

다음 낱말은 또 어떤지 보자.

즙물(汁-) : ‘즙액’의 북한어.

즙액과 함께 즙물이라는 말도 남한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다. 그런 문제와 별개로 즙액의 표준국어대사전 풀이가 다음과 같이 되어 있는 걸 보고 한숨이 절로 나왔다.

즙액(汁液) : 즙을 짜낸 액.

즙(汁)은 액체를 뜻하는 한자어다. 그런데 위 풀이를 보면 액체를 짜낸 액체라는 식으로 돼 있지 않은가. 이쯤 되면 난국이 따로 없다고 하겠다. 같은 낱말을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물기가 있는 것에서 짜낸 액체’라고 풀이했다. 표준국어대사전의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볼 때마다 ‘표준’이라는 말이 고생을 많이 한다는 생각부터 든다.

양배추를 가두배추라고 한다든지 개고기를 단고기라고 하는 것들은 북한 사람들만 쓰는 말이니 당연히 북한어라고 해야 한다. 일부 그런 말들을 제외하면 남한의 어휘와 북한의 어휘는 큰 차이가 없다. 남북한 언어의 이질성을 강조하기 전에 애꿎게 북한어로 몰린 낱말들의 명예부터 회복시켜 줄 일이다. 나는 덩굴장미보다 넝쿨장미라는 말이 입에 더 달라붙고 좋다. 국화과에 속한 금계국(金鷄菊)이라는 이름의 꽃이 있은데, 북한에서는 각시꽃이라고 한다. 넝쿨장미와 마찬가지로 나는 금계국보다 각시꽃이라는 말이 좋다. 그런데 설마 이런 것도 북한을 고무 찬양하는 일에 해당하는 건 아니겠지? 국가보안법 7조의 고무·찬양 조항이 여전히 살아 있다고 하니, 풀어야 할 숙제가 참 많다.

시인 (pih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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