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민변과 참여연대를 문재인 정부의 숙주쯤으로 여긴다. 조선일보가 문재인 정부를 때릴 때면 늘 등장하는 게 민변과 참여연대다. 조선일보에 등장하는 민변과 참여연대는 늘 부정적 의미로만 소비됐다.
시민·사회단체가 정부에 소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시민들의 결합체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특정 정치세력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거나 이를 넘어 청와대와 정부부처 수장이나 공기업 대표 자리를 꿰차는 정치적 출사의 예비공간으로 기능한다면 당연히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그런 뜻에서 조선일보가 발굴해 낸 현 정부와 민변·참여연대의 연결고리는 일면 타당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지나쳤다.
조선일보는 한 사람의 공직자가 살아오면서 갖춘 여러 경력 가운데 유독 이 두 단체 이력만으로 그 사람을 자주 일도양단해 버렸다. 사실 민변 안에도 보수적인 변호사가 있고, 참여연대 안에도 정치색이 다른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도 이런 다양성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이번에 좋은 사례가 드러났다. 민변과 참여연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신도시에 100억원대에 달하는 땅 투기를 했다는 의혹을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어 공개했다. 다음날 아침 신문이 1면에 이를 다뤘다. 한겨레는 3일 ‘광명 시흥 새도시 발표 전에 LH 직원들 100억대 투기 의혹’이란 1면 기사의 두 번째 문단의 주어를 ‘민변과 참여연대’로 달아 이번 폭로의 주체를 명확하게 밝혔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같은날 ‘3기 신도시 100억 땅 투기 의혹 LH, 직원 12명 직무배제 조치’라는 제목으로 같은 내용을 1면에 보도하면서 폭로 주체를 ‘시민단체’라고만 달았다. 조선일보 1면엔 폭로의 주체인 민변과 참여연대가 등장하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10면에 이어진 기사에 가서야 폭로 주체가 ‘민변과 참여연대’라고 밝혔다. 한겨레가 이어진 6면 기사 제목 바로 아래 기자회견을 하는 두 단체 관계자들 사진을 크게 실었지만 조선일보는 10면에도 두 단체 인사들의 기자회견 사진 없이 폭로 사실만 나열했다.
두 단체도 모르진 않았을 거다. 특히나 최근 임용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땅 투기 당시 LH 사장이라서 이번 폭로가 현 정권에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두 단체는 제보받은 내용을 충실히 조사했고 숨김 없이 폭로했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는 곧 민변과 참여연대 인사들의 안방이라는 조선일보의 가설은 여지없이 부서졌다. 깨진 가설에 주춤할 법도 한 조선일보는 다음날인 4일자 지면에선 변창흠을 집중해서 걸고넘어졌다. 조선일보 4일자 1면 머리기사는 ‘책임져야 할 변창흠에 LH 조사 맡겼다’라는 제목을 달아 변 장관에게만 집중했다. 이어진 2면 머리기사엔 머리를 긁적이는 변 장관의 사진도 실었다.
변 장관 임용을 놓고 그가 자격 미달임은 이미 이 지면에서 밝혔다. 투기를 잡고 부동산을 안정시킬 재주가 그에게 없어서였다. 나는 이를 두고 문재인 정부의 무능한 인사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LH 임직원 땅 투기가 변 전 사장 때문이라고 몰아붙이는 건 비약이다. 그들의 땅 투기가 어디 변 전 사장 때만 일어났을까.
해방 이후 70년 넘는 세월 동안 땅 투기로 재미 본 이들이 큰소리치고 높은 자리에 앉는 걸 수없이 지켜본 게 이 나라 국민이다. 그렇게 땅 투기로 높은 자리 오른 이들이 땅 투기 근절한답시고 각종 개발을 앞세운 공급정책을 해결책으로 내놓는 걸 수없이 지켜봤다. 그렇게 로또처럼 불로소득을 챙겨 온 ‘개발연대’는 그대로 놓아둔 채 LH 임직원만 비난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