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지인은 모든 권리 가운데 ‘오줌권’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권리라고 단언했다. 진지하게 말해서 ‘호흡할 권리’를 제외한다면 맞는 말 아닌가. 모두가 어디서든 편안하게 오줌을 눌 자격이 있다는 ‘오줌권’은 필수적이고 정당한 권리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실격당한 자를 위한 변론> 김원영, ㈜사계절출판사)
김원영은 그의 저서에서 추상적인 권리를 구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히며, 그중 하나로 오줌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이 생리적 욕구를 본인이 원할 때 해결하는 것은 일종의 신체적 자유권이겠지만 ‘오줌권’이라고 명명할 때 ‘자유권’보다 실제적인 힘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오줌권’ 투쟁은 장애운동 영역에서 공중 장애인 화장실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이뤄져 왔다. 현재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라는 슬로건으로 공공 영역에서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의 오줌권을 보장하기 위한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오줌권 보장은 공중화장실에서만 지켜지면 되는 걸까? 하루 최소 8시간을 머무는 일터에서도 마음대로 화장실을 갈 수 있는 권리만큼은 최소한 보장돼야 하지 않을까?
2019년 건설연맹 여성위원회는 근무 중에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여성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고발했다. 구체적으로 건설근로자공제회가 2018년 발표한 ‘건설근로자 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장에 화장실이 없다고 응답한 여성(12.1%) 비율은 남성(0.9%)보다 12배 이상 많았고, 화장실이 있더라도 접근성이 불편하다고 대답한 여성(41.4%)이 남성(29.2%)보다 12%포인트나 많았다. 그뿐만 아니라 2019년 백화점·면세점 판매직 노동자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백화점·면세점 노동자 10명 중 6명은 근무 중 화장실을 가고 싶었으나 가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다른 인구집단에 비해 3배 이상 방광염에 걸렸다. 일하는 여성들에게 ‘오줌권’은 보장되지 않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여성노동자들의 화장실 이용을 이토록 어렵게 하는지 구조적인 문제를 밝히고 이에 대한 건강 영향을 평가하고자 “여성노동자 일터 내 화장실 이용 실태 및 건강 영향 연구보고서”에 참여했다. (해당 보고서는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4일 온라인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최대한 다양한 직종을 대상으로 조사하고자 했고, 설문 결과로 드러나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는 면접 조사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 그 결과 건설, 서비스, 이동·방문, 제조업 등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들은 화장실 갈 시간이 없어서, 눈치 보여서, 화장실이 없어서, 화장실이 더러워서 등 다양한 이유로 근무시간 중에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었다. 요의가 느껴지면 화장실을 참기가 더 어려워지니, 여성노동자들은 근무 중에 수분 섭취 제한, 지사제 복용 등의 방법으로 몸을 통제하고 있다. 일터 내 ‘오줌권’을 보장받지 못한 그들에겐 가고 싶을 때 마음대로 화장실을 갈 수 있는 자유에서부터 스스로 물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을 자유까지 박탈돼 있다.
뿐만 아니라 일하면서 화장실을 편하게 가지 못하자, 여성노동자들은 질염·방광염·신우신염 등 다양한 질병들을 겪게 됐다. 이는 화장실을 가지 못해 발생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여성노동자들은 이를 회사에 알리거나 산업재해 신청을 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방광염에 걸렸다고 하면 “문란한 여성이 걸리는 병, 신혼일 때 많이 걸리는 병” 따위의 수식어가 붙기 때문에 방광염 진단서를 회사에 제출하기 꺼려진다는 것이다. 질환에 대한 차별적 인식으로 인해 여성노동자들은 산재 신청은 물론 질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터에서의 오줌권이 박탈돼 발생한 문제들은 다시 여성노동자들에게 2중·3중의 고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오줌권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신체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권리다. 그런데도 일터에서는 오줌권조차 사회적 위계에 따라 차별적으로 보장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을 다루는 기본권만큼은 평등해야 하며, 이는 공적 영역은 물론 ‘일터’라는 사적 영역에서도 그러해야 한다. 일터에서 그 누구의 오줌권도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