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2003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은 ‘검사와의 대화’라는 이상한 이름의 간담회를 열었다. 방송 생중계까지 하면서. 그 자리에서 한 검사가 ‘83학번 드립’을 쳤다. 고졸 대통령에게 대학교 학번을 묻는 기가 막힌 현실 앞에서 국민은 질색했다. 노 대통령은 굳은 얼굴로 “오늘은 대통령의 약점을 건드리는 자리가 아니다”고 말했다.

막강했던 이승만의 친일 경찰에게 뺨이나 맞았던 검찰이 정통성 없는 박정희 정권과 짝짜꿍이 돼 승승장구한 지 반세기 만에 무소불위의 권력이 됐다. 비꼬는 웃음을 날리며 천연덕스럽게 질문했던 검사는 그 뒤로도 10년 넘게 더 검찰에 몸을 담았다.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은 자신의 책 ‘운명’에서 이를 두고 ‘목불인견’이었다고 썼다. 그만큼 뼈에 사무쳤으리라. 나는 문재인 정부가 검찰개혁만큼은 제대로 할 것으로 봤는데, 안타깝기 그지없다. 역발상이 아니고선 그 어떤 개혁도 난망하다.

나이 오십이 넘도록 붉은 마음을 버리지 않고 굳건하게 사회주의자로 살아가는 이민석 변호사가 지난 일요일 밤 자정을 막 넘긴 시간에 페이스북에 “김대중은 만주건국대에 다녔다는 식으로 공직선거 경력란에 기재하기도 했다”며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썼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통계를 찾아보니 김대중 전 대통령은 60년 7월 치러진 5대 총선 때부터 ‘건국대 3년 중퇴’ ‘건국대 정경과 수료’ 같은 학력을 기재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목포상고 3학년 당시 성적이 우수해 만주건국대 입시를 준비했으나 해방돼 입학하지 못했다고 했다.

70년대 이후 선거에선 주로 경희대 대학원 경제학과 ‘수료’나 고려대 경영대학원 ‘수업’ 같은 학력을 사용했다. 해방 이후 첫 정권교체를 이뤄낸 97년 대선 때 와서야 김대중 후보의 학력은 ‘목포상고 졸업’으로 제자리를 찾았다.

지금 상식으론 이해가 안 되지만 당시엔 그랬다. 그만큼 백면서생을 숭상하는 유교의 나라는 굳건했다. 그래서 출마자마다 뭐라도 한 줄, 대학 근처에 들어갔다는 흔적을 남기려 안간힘을 썼다.

만주건국대는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 문관을 양성하던 어용대학이었고, 졸업하면 만주국 관료가 됐다. 만주의 신경군관학교가 만주국 군 간부를 양성했고, 만주건국대는 행정관료를 양성했다. 둘 다 일본 제국주의의 첨병을 만드는 학교였다. 박정희는 혈서를 쓰고 신경군관학교에 입학했다.

최남선이 만주건국대 교수로 간다는 소리를 듣자 위당 정인보 선생은 최남선의 집 대문 앞에 술을 부어 놓고 “이제 우리 육당이 죽고야 말았다”며 대성통곡했다.

입학하지도 않은 대학에 다녔다고 학력을 채워야 했던 시절을 뒤로하고, 지금은 학교 문을 스스로 박차고 나오는 청춘도 많다. 세상이 변했다. 그만큼 당당해졌다.

조선일보가 지난 19일 12면에 문재인 정부가 ‘산재 사고 사망자 50% 감축’이란 공약을 못 지켰다고 비판했다.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는 2016년 969명인 산재 사고사망자를 2022년까지 500명 이하로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이 공약은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진짜 노동안전을 생각한다면 해마다 은폐돼 통계에도 안 잡히는 산재 사고사망자를 더 드러내는 것부터 필요하다. 그래서 ‘숨은 산재 찾기’를 공약해야 옳았다.

7년 전 전 울산 산재추방연합이 대공장 주변 주요 병원을 찾아다니며 입원환자를 조사한 결과 80% 이상이 은폐된 산재 환자였다.

제대로 된 정권이라면 숫자 놀음 하는 통계 판을 확 엎어 버릴 용기가 필요했다. 적당히 통계 숫자 줄인다고 산재는 절대 줄어들지 않는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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