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서울 소재 한 대학 국문과를 졸업한 최아무개(26)씨는 일찌감치 대기업을포기하고 중소기업에만 지원서를 냈다. 그러나 1년 동안 지원한 30여개 중소기업어느 곳에서도 합격 통지서는 날아오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진 최씨는 일단취직부터 하고 보자는 생각에 인력 파견업체를 통해 비정규직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비정규직도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전공학과와 성적, 그리고 경력을따졌다. 마침내 최씨는 한 대기업의 대표이사 승용차 운전직에 지원해 1년짜리계약직으로 취직할 수 있었다. 최씨는 요즘 운전대를 잡으며 영어회화 공부를 하고있다. 내년에는 반드시 `정규직'으로 취업하기 위해서다.

역시 올해 한 여자대학 가정대를 졸업한 송아무개(23)씨도 최근 정규직을포기하고 한 외국계 기업의 `리셉션' 담당 비정규직으로 입사했다. 회사 입구에앉아 하루 종일 걸려오는 전화와 찾아오는 손님을 안내하는 일이다. 정규직에 비해절반인 상여금을 받을 때면 송씨는 `비정규직'이란 신분을 실감한다.

사상 유례없는 취업대란이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취업길이 막힌 대졸구직자들이 그동안 거들떠 보지 않던 비정규직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이다. 우선비정규직에 들어가 경력을 쌓은 뒤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비정규직이라고 취업이 쉬운 것은 아니다. 이미 모든 일자리가 조건과 자격에상관없이 `좁은 문'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경력이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3년 동안 해온 전산직에서 벗어나 새로운업무를 해보고 싶어 회사를 그만뒀던 강아무개(29)씨는 최근 1년 가까이 지속된`백수' 생활을 접고 다니던 회사로 되돌아갔다. 경력자들이 줄지어 원서를 내는마당에, 새로 일을 가르쳐야 하는 강씨를 뽑겠다는 회사는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전산직으로 재입사하는 것도 `비정규직'이란 바뀐 조건을 감수하고서야 가능했다.

취업대란에다 기업들의 경력 위주 채용이 늘어나면서, 비정규직 취업이 점차보편화되는 추세다. 특히 인력 채용이 마무리되는 연말이 다가오자 마지막대안으로 비정규직을 찾는 대졸 구직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인력파견업체 키스템프에 따르면, 지난 10월 이 회사에 비정규직 구직을 의뢰한대졸 구직자는 전체 비정규직 구직자 4000여명 가운데 1599명(40%)으로 전달인9월(849명)에 비해 2배 가깝게 늘었다.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하면 무려 다섯배나늘어난 수치다. 또다른 인력파견업체인 캐리어스의 한 관계자도 “예전과 달리고학력 지원자가 워낙 늘어나 인력 모집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고 전했다.

키스템프 유수훈 대표는 “비정규직에 대졸자가 몰리는 것은 취업난으로 인한하향지원 추세라기보다는, 기업들이 경력직을 선호하다 보니 비정규직을 경력쌓기로 활용해 정규직으로 옮기려는 구직자가 급증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분석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