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해고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복직은 개인 문제, 개별 노사관계를 넘어서고 있다. 부산에서 청와대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억울하게 일터에서 쫓겨난 모든 해고 노동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고 있다. 김진숙의 복직을 염원하는 노동자·학자·정치인·청년의 글을 연재한다.<편집자>
불가능해 보이는 아득한 먼 길이었다.
그가 다시 길을 나섰을 때 우리는 죽비를 기분 좋게 얻어맞았고, 어두운 산길을 헤매고 있을 때 한 줄기 빛을 만난 기분이었다. 35년 끝장투쟁을 위해 그는 강도 높은 최고의 전술로 일을 낼 것이라 생각했고 부산에서 청와대까지 걷는다고 했을 때 오히려 난 안도했고 반가웠다. 그러나 이 길 끝에서 응답이 없으면 그는 더 큰 길을 낼 것이다.
“종이 종 부릴 때 더 무섭다.”
‘사람이 먼저다’ ‘노동존중’이라는 문재인의 말에 뭔가 달라질 것이라 기대했다. 허약하기 짝이 없는 내 계급의식에 부끄러움과 자책을 갖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촛불이 꽃병이 되지 못하므로 겪어야 하는 수모와 후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에도 파업을 하는 노동자들은 구속과 수배, 해고를 밥 먹듯이 당한다. 그러나 지난해 의사 파업 때 의사들은 누구하나 법에 의한 조치를 당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 앞에 맥없이 굴복하며 정부 스스로 무법천지임을,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를 증명했다.
2일로 김진숙 복직을 위한 청와대 앞 단식 43일차다. 혹한을 피하기 위해 비닐 한 장 들이는 것도 수십 일 싸워야 했고, 힘든 단식자들이 등을 기댈 의자도 1일 겨우 들어왔다.
단 하루도 단식자들을 가만두지 않아 조용한 날이 없다. ‘사람이 먼저다’가 ‘자본이 먼저다’라며 ‘자본천국 노동지옥’으로 간 지 오래다. 그가 독재타도를 외치며 민주화 투쟁을 한 이력이 비닐 한 장 친 데에 병력을 배치하는 치졸함 속에 “종이 종 부릴 때 더 무섭다”는 말을 실감한다.
그가 걷고 난 길은 꽃이 핀다.
투쟁하는 간절함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연결되고 그 힘들이 언젠가는 폭풍처럼 일어나 세상을 호령한다. 단식투쟁을 지지하고 만 배 절 투쟁을 만들어 내고 희망 뚜벅이들의 정열적인 발걸음들이 장엄하게 이어지면서 그 힘들은 분명 하늘을 흔들 것이다.
목숨 걸고 단식투쟁하는 동지들은 김진숙 지도위원이 서울에 입성하면 바로 입원하겠다고 한다. 만나는 것이 쑥스럽고 부끄럽단다. 마치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수행에 정진하는 수행자처럼 자신들의 목숨 건 투쟁을 딛고 또 투쟁을 만들어 가는 그들의 순수한 연대의 힘은 전국을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
그걸 안 저들은 비닐 한 장에도 병력을 배치하는 것이다.
부산에서 청와대까지 걷고 있는 김진숙의 청와대 입성이 딱 일주일 남았다. 관절은 바람에 휘청거리고, 발은 나무에 옹이가 생기듯 굳은살이 나무껍질처럼 박히고, 안기부에 끌려가 고문당한 허리는 혹한의 한기에 더 기를 못 펴고, 재수술한 부위에선 차가운 대나무 소리가 허우적거린다.
그런 김진숙 지도위원이 걷는 속도에 놀라워하고 따라잡기 힘들다고 원성(?)이 자자하지만 전국 동지들의 응원과 동행이 그의 힘겨운 몸을 깃털처럼 움직이게 하고 있다.
공장 폐업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대구 한국게이츠와 울산 대우버스 동지들이 선두에 서서 깃발 높이 들고, 많은 인연과 사연 안은 사람들이 김진숙과 동행하며 새로운 날을 만들어 가고 있다.
오래된 안부를 묻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들고 온 간식을 풀며 정을 내고, 인간의 길 노동자의 길을 만들기 위한 다짐을 하며 목울대에서 올라오는 뜨거움을 삼키며 길을 나선다.
곧 입춘이다. 봄소식을 알려줄 매화는 “일생을 추워도 향을 팔지 않는다”.
이 글귀를 읽을 때마다 김진숙이 생각났다. 어려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 원칙으로 우리 모두가 김진숙이 돼 길을 나선다면 파업 이상의 축제를 열며 결과를 낼 것이다.
이번 주말이 마지막 희망 뚜벅이 걷는 날이다. 그는 ‘천리 길’을 걸어오고 있다. 이제 그의 마지막 걷기 일요일에 우리가 ‘10리길’을 만들어 그를 마중하자.
그 연대의 힘으로 그를 복직시키고 평안하게 방사선 치료를 받게 하고 멀지 않은 날에 날아가는 새들도, 우리도 울리는 대중연설을 우렁차게 반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