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혁명이 금융산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은행들이 인터넷·모바일뱅킹 같은 디지털 금융과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점포를 축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씨티은행과 KEB 하나은행의 점포 축소가 특히 두드러진다. 부작용이 만만찮다. 점포 이용이 불가피한 저소득층과 고령층은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은 인력부족과 고강도 노동에 시달린다. 금융산업 경쟁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디지털 금융 시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편향적 핀테크 지원이 부른 규제정책 권위의 위기
조혜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선임연구위원
 

▲ 조혜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선임연구위원
▲ 조혜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선임연구위원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유행시킨 언택트 비즈니스 대세론의 힘을 받아 최근 은행권의 점포 폐쇄 발걸음이 또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상반기 중에만 내국계 시중은행 4곳에서 총 95개의 점포가 사라졌다.

은행권의 점포 폐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코로나19 팬데믹 훨씬 이전부터 인터넷·모바일 뱅킹 확산으로 금융서비스의 비대면 거래가 일상화된 지는 이미 오래다. 이와 함께 은행권의 점포 폐쇄도 연례행사처럼 상시화했다. 은행별로 점포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는 시점, 강도와 양상에 차이가 있으나 시중은행권 전체적으로 점포수 축소가 고착화하기 시작한 것은 2013년부터다. 2013년 123개가 줄어든 것을 신호탄으로 2014년 179개, 2015년 108개, 2016년 167개, 2017년 286개의 점포가 사라졌다.

2020년의 점포 구조조정은 전혀 이례적이지도, 전례 없는 규모도 아니다. 그럼에도 지난해 은행권 점포 폐쇄가 새삼스럽게 주목을 받은 것은 은행권의 경쟁적인 점포 폐쇄를 억제하기 위한 금융당국의 엄포와 호소가 무용지물이 돼버렸다는 사실 때문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 들어 금융당국이 은행권의 공격적인 점포 폐쇄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내비치며 점포 구조조정 속도를 늦추기 위한 개입에 나섰다.

이러한 금융당국 시도가 효과를 발휘해 2018년 24개, 2019년에는 50개로 폐쇄 점포 수가 큰 폭으로 줄었다. 잠시 주춤했던 은행권의 점포 구조조정이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상황을 틈타 금융당국의 공식적·비공식적 개입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가는 양상이다. 금융당국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은행권의 행보는 매우 당혹스럽다. 금융당국의 권위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면 규제정책의 권위도 같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금융당국과 은행권은 금융의 디지털화라는 미래 과제를 공동으로 헤쳐나가야 할 직접적 당사자라는 점에서 금융당국에 대한 은행권의 불응과 저항은 매우 우려스럽다. 왜냐하면 핀테크 혁신과 디지털 뱅킹화에 관한 금융당국의 규제정책이 금융시장 경쟁의 양상과 강도를 좌우하고 운영 위험과 준법 비용의 배분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라는 점에서, 규제정책의 권위가 도전을 받는 것은 금융 디지털화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 이익갈등을 증폭시키는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이후 시중은행권에서 연례행사로 자리잡은 점포 구조조정은 인터넷·모바일 뱅킹 이용률 증가와 고객의 점포 방문 수요의 감소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비용 절감에 방점을 둔 경영전략적 동인도 가세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택담보대출 확장에 의존한 외형 성장이 한계에 도달하고 은행 수익성 위기가 전면화되자 비용 효율성 관리를 위한 점포 축소 유인이 영업망 확대 수요를 압도하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2015년을 기점으로 점포 축소 유인을 한층 증가시키는 또 따른 강력한 요인이 추가된다. 금융당국의 핀테크 육성정책이다. 비금융 핀테크 혁신 기업의 은행시장 진출을 허용해 국내 은행시장의 과점 경쟁 양태의 근본적 변화를 유도하는 금융당국의 디지털 금융 육성정책이 은행 점포 구조조정 배후의 구조적 요인이다.

디지털 금융을 촉진하려는 금융당국의 규제정책이 한편에서는 비금융 핀테크 기업을 우대해 규제 차익을 보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디지털 전환 비용 부담을 기존 은행권에 전가하는 편향을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은행권의 공격적인 점포 폐쇄와 비대면 채널 전환의 가속화는 편향적 규제정책의 필연적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뒤늦게 금융당국이 점포 폐쇄에 제동을 걸고 은행권을 압박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일뿐만 아니라, 규제정책의 일관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금융당국에 대한 은행권의 불신이 규제정책에 대한 불응과 저항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은 막아야 한다. 금융당국이 권위와 신뢰를 회복하려면 자신에게 부여된 본래의 사회적 목적에 충실하게 디지털 금융의 시장참여자 간 위험과 비용을 공정하게 배분하는 규제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편향적인 핀테크 지원·육성정책, 일자리 압박 등 정부가 디지털 뱅킹의 혁신 경로에 직접 개입해 경쟁 질서를 왜곡하는 정치적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기회요인과 위험요인이 공존하는 금융 디지털화의 성공을 위한 전제조건이자 규제정책의 공익성을 확보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폐쇄 아닌 ‘변신’
이상훈 금융경제연구소장(변호사)
 

▲ 이상훈 금융경제연구소장(변호사)
▲ 이상훈 금융경제연구소장(변호사)

2019년 말 현재 시중은행 부문의 점포수가 최고점 대비 20%가 줄어드는 등 구조조정이 심각하다.

은행 점포 축소는 단지 노동자의 고용불안을 초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민의 일상생활에 다양하게 영향을 준다. 인터넷 뱅킹 발달로 은행 점포에 갈 일이 줄었더라도 환전이나 대출을 하려면 여전히 직접 가야 한다.

은행 점포 축소 현실은 심각해지는 양극화의 어두운 단면까지 각인시켜 준다. 왜냐하면 점포 축소가 수익성이 없는 점포를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부터 진행되다 보니 기초생활수급비와 노령연금 등 현금을 기반으로 생활하는 취약계층은 갈수록 멀어지는 은행까지 힘들게 가야 한다. 반면 부유층이 많은 지역의 경우는 자산가들에 대한 자산관리 서비스를 강화한 복합 점포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은행은 디지털금융 기반으로 급속도로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적응하고 생존하기 위해 점포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올해 1월 금융노조가 주최한 금융노동포럼에서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의 조혜경 박사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인터넷·모바일 뱅킹이 은행 수익성과 효율성 개선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고, 뚜렷이 좋아진 것은 고객의 편의성으로 분석됐다. IT투자 비용, 고객관리 및 고객 유치 비용, 감독 준수 비용 등 새로운 고정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은행 점포 축소로 인한 사회적 폐해는 심각하다. 점포의 80%를 폭력적으로 폐쇄한 한국씨티은행은 2012년부터 9년 동안 신입직원을 뽑지 않았다. 청년 일자리가 막혔고, 조직은 활기를 잃었다. 콜센터 용역직원도 전원 계약 해지됐다. 위기의 순간에 해고 위험과 고용 비용이 가장 약한 고리인 고용 약자에게 전가된 것이다.

고령자 피해도 크다. 고령자 중심의 세대별 노조인 노후희망유니온은 금융노동포럼에서 고령자들은 휴대폰으로 금융 거래를 할 때 팝업창이 뜨면 혹시라도 잘못 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서 그냥 꺼버린다고 했다. 오히려 실버 지점과 같이 고령자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기관은 일반 주식회사와 다르다. 금융기관이 부실화하면 금융시스템 붕괴 방지를 명분으로 국민의 세금을 재원으로 한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점포 축소 속도가 가장 빠른 하나은행은 외환위기 이후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된 서울은행을 역합병이라는 편법 수단을 동원해서 현재의 거대은행으로 성장했다. 우리은행 역시 전신인 한빛은행 등 5개 금융회사의 부실을 정리할 때 12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됐고 현재도 정부의 관리를 받고 있다. 따라서 국민의 세금이 투입됐거나 투입될 수 있기 때문에 국민들도 점포폐쇄에 대해 말할 권리가 있다.

점포를 폐쇄하면 당장의 현금자산이 증가하기 때문에 경영진으로서는 재무구조 개선 열매를 가질 수 있는 유혹에 빠진다. 그러나 우리나라 은행들은 대부분 공적자금이 투입된 과거의 특수성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그만큼 공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은행 점포를 무작정 폐쇄하지 말고 디지털 시대에 맞춰 유연하게 변신을 시도해야 한다. 이주민이 많은 지역에 일요일만 문을 여는 점포를 개설한 것도 좋은 시도다.

은행 점포는 병원·주민센터와 함께 서민들의 이동량이 많고 익숙한 3대 공간이다. 퇴직한 금융기관 직원을 활용해서 금융과 복지·고용을 결합한 증간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렇게 좋은 공간을 함부로 없애는 것은 사회적 자원 손실이다. 이해관계와의 협의을 충분히 진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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