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코로나19 위기로 묻혀 버렸지만, 매 연말연시는 파견·용역 노동자들이 계약해지나 용역업체 변경으로 일터에서 쫓겨나는 사건이 집중되는 시기다. 2021년 새해에도 매서운 추위와 그보다 더 차가운 원청의 탄압에 맞서 일터로 돌아가기 위해 싸우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즐비하다. 10년 이상 LG트윈타워 건물을 청소해 온 청소노동자들이, 30년 가까이 동강병원에서 환자식을 만들어 온 조리원들이, OB맥주 물류노동자들이, 하이트진로의 생맥주기계 설치·유지 업무를 해 온 하청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일터에서 쫓겨나 싸우고 있다.
이들의 사연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왜 사용자들이 용역·하청과 같은 간접고용을 활용하는지 알 수 있다.
첫째, 원청에 대한 각종 규제를 피해 나갈 수 있다. LG그룹 총수인 구광모 회장의 두 고모가 설립한 용역회사에 74개 계열사 용역계약을 몰아줘서 2019년에만 60억원의 배당금을 챙기도록 한 LG그룹, 하이트진로그룹 총수인 박문덕 회장의 큰 아들이 설립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줘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이 부과됐던 서해인사이트, 금호그룹 박삼구 전 회장의 경영권 다툼에 활용됐던 금호아시아나재단이 100% 지분을 소유한 아시아나 용역업체 케이오 사례를 보자. 재벌 대기업들이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나 일감 몰아주기를 위해 용역·하청을 활용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용역노동자들에겐 최저임금 수준만 주면서도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얻은 막대한 이윤과 배당금을 총수 일가가 손쉽게 독식할 수 있으니 이보다 유용한 규제 회피 방법이 없다.
둘째, 간접고용을 활용하면 노동조합을 상대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쉽게 피할 수 있다.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동강병원 조리원, OB맥주 경인직매장 노동자, 하이트진로의 하청업체 서해인사이트 노동자 모두 노조에 가입해 최저 수준인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자 하루아침에 용역업체가 계약해지되거나 폐업을 했다. 노동자들은 수십 년을 원청의 일터에서 일했건만,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별안간 일터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다. 부당노동행위라고 항의해도 원청은 용역업체 변경에 따른 것일 뿐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며 노동법 뒤에 숨을 수 있다. 심지어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원청이 부당노동행위의 책임자라고 주장하고 교섭을 요구하면, 명예훼손으로 업무방해로 건조물침입으로 고소하거나 조합활동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해서 노조를 탄압하기도 쉽다.
셋째, 간접고용을 활용하면 위험과 비용을 노동자와 사회 전체에 전가하기가 쉽다. 분류작업은 자신들의 업무가 아니라며 택배노동자들을 초장시간 노동과 과로사로 내몰고 있는 택배회사들이나, 코로나19 감염 위험 속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에 대한 안전보건 조치를 취하지 않고도 산업재해는 나 몰라라 하는 쿠팡과 같은 회사들,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임에도 휴업수당의 10%를 부담하기 싫어서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한 케이오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사용자가 부담해야 할 최소한의 비용마저 책임지지 않고 그에 따른 고통은 노동자와 사회로 전가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이 간접고용을 선호하는 이유가 이러하다면, 그에 대한 대책도 간접고용을 활용하려는 유인을 줄여 나가는 방향으로 맞춰야 한다. 우리보다 먼저 이 문제를 고민해 온 외국에서 대처해 온 방안은, 간접고용 노동자들과 용역·하청회사를 사실상 지배하는 원청에게 노동법적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다. 가까운 사례로 일본은 이미 1970년대부터 원청·지배기업이 간접고용 노동자를 조직한 노조의 단체교섭 상대방이라는 점을 노동위원회와 법원 판결을 통해 보장해 왔다. 이에 따라 자회사와 용역·하청회사 노동자들이 모회사·원청을 상대로 고용 보장, 노동조건 개선, 일터 안전 확보 등을 요구하며 단체교섭할 권리를 인정하고 원청의 부당노동행위를 규제해 왔다.
우리 사회의 비정규 노동자들도 20여년 동안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근로자’와 ‘사용자’ 정의를 현실에 맞게 개정해 노동기본권을 확보하고자 싸워 왔다. 그러나 그 20년 동안 정부와 국회는 이 문제는 논의 테이블에조차 올리지 않으려 했다. 2021년 새해를 맞아 다시 한번 머리띠를 졸라매야 할 때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