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세계일보가 ‘끊어진 계층이동 사다리’라는 이름의 연중기획을 이어 간다. 지난 13일 10면엔 ‘중소기업서 대기업 이직 바늘구멍 … 비정규직 탈출 꿈도 못 꿔’라는 제목의 기사로 지난해 비정규직에서 정규직 전환 비율이 6.6%에 불과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세계일보는 같은 10면에 실린 별도기사 제목을 ‘대형노조, 취약 노동자 포용 못해 불평등 심화’라고 달았다. 세계일보는 오늘날 극단적 이중 노동시장을 만들어 낸 주범을 ‘대공장 정규직노조’라고 확정해 버렸다. 내외부로 분리된 노동시장을 구축해 온 대기업과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물론 대공장 정규직노조가 잘못한 것도 많다. 최근 민주노총 내 대기업노조마저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하지 않고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사례도 늘어나 더욱 안타깝다. 하지만 아직도 상당수 정규직노조는 내부 반발에도 정규직 전환에 찬성한다. 오히려 언론이 더 극성스럽게 정규직 전환을 마치 무임승차처럼 취급하며 반발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을 확대재생산하면서 노노 갈등만 부추겨 온 언론은 정규직노조를 탓할 자격이 없다. 그런데도 언론은 대기업 정규직노조에 화살을 돌리면서 잘못된 프레임을 고수한다. 이런 지적질은 문제 해결엔 어떤 도움도 안 된다.

공공기관부터 비정규직 차별에 눈을 감으니 너도나도 계층이동 사다리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2019년 8월9일 폭염 속에 서울대 2공학관 지하 1층 계단 옆 가건물 휴게실에서 잠자던 60대 중반 청소노동자가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휴게실에는 창문도, 에어컨도 없어 찜통이었다.

잊을 만하면 아파트 경비노동자를 향한 입주민의 도를 넘는 폭언과 폭력이 사건화하지만 언론은 그때뿐이다. 한국일보는 지난 12일 1면에 이어 8·9면을 털어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삶’을 소개하면서 입주민에게 뺨 맞아도 쉬쉬하면서 살아간다고 했다.

교수 출신인 산업은행장은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쌍용차노조를 향해 “파업하면 1원도 지원 못한다”고 날을 세웠다. 2009년 77일 파업 이후 지금까지 11년 동안 단 한 번도 파업하지 않은 노조에게 왜 이런 엉뚱한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거대 집권 여당 손에 누더기가 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던 날 인천 동구 두산인프라코어 공장에선 천장 누수를 복구하던 60대 계열사 노동자가 떨어져 숨졌다. 이런 누더기 법안을 보고도 보수언론은 “원청이 하청업체 안전을 어떻게 24시간 확인하냐”며 볼멘소리만 한다.(동아일보 1월9일 4면) 그냥 재벌 홍보지일 뿐인데 언론이라고 우긴다. 같은 날 조선일보는 1면에 “참담하다”는 경제단체의 반발을 활자로 담았다.

결국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중대재해기업보호법으로 둔갑했다. 재벌과 재벌 눈치 보는 거대 정당의 합작품이다.

문재인 정권은 집권 3년반 동안 국가 개혁을 검찰 개혁으로 축소하더니, 이젠 공수처 설치에 올인하는 듯하다. 그렇게 뽑은 공수처장 후보자도 김앤장 출신에다가 2003년 5~9월 다섯 달 동안 분가와 합가를 반복하면서 위장전입한 인물이 낙점됐다.

이런데도 대통령을 향한 팬덤 정치는 극으로 치달린다. 지난 5일 오전 10시께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 놓인 윤석열 검찰총장 응원 화환에 70대 남성이 불을 질렀다. 검찰에 응원 화환을 보내는 사람들도 웃기긴 마찬가지다.

정인이 사건 직후 성난 여론에 쫓겨 급하게 내놓은 정부 대책이란 게 고작 입양을 좀 더 까다롭게 관리하는 거란다. 아동학대는 친부모와 양부모를 가리지 않는데 사건만 터지면 누구 하나 악마로 만들어 분풀이하려는 언론의 호들갑 때문에 이런 황당한 발표가 대책으로 둔갑한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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