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관홍 공인노무사(공공운수 법률원)

죽음에 경중이 있을까. 요즘 화물 운전노동자들의 사망 사건들을 다루면서 드는 생각이다. 어느 노동자의 죽음은 다행히 언론에서 다뤄지고 이슈가 되면서 사회 제도를 바꾸는 계기가 되는데, 어떤 분들의 죽음은 아예 드러나지도 않고 알 수도 없으며 간혹 드러난다고 해도 그냥 스쳐 지나간다.

몇 년 전 화물노동자가 본인이 하지 않아도 될 철강 상차 작업을 하다가 트럭 위에서 떨어져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화물노동자들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자체가 적용되지 않는 신분이었기에 산재 유족급여 신청을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2019년 고용노동부는 화물노동자들의 끈질긴 요구로 일단 운전업무 이외의 업무를 하다가 사고가 나서 다치거나 사망한 경우 산재보험을 적용하도록 하는 지침을 발표했다. 원래 화물 운전노동자들의 업무는 말 그대로 ‘운전’만 하는 것인데, 관행적으로 본인이 운반한 물품의 상하차 즉, 물건들을 싣고 내리는 작업까지 당연하게 수행해 왔다. 물론 해당 상하차 작업까지 계약 내용에 있었다면 문제는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 상하차 작업을 하다가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매우 많았고 근로복지공단도 그러한 현실을 반영해 지침까지 마련해서 산재 적용의 사각지대에 있는 화물노동자들의 안전을 보호하고자 한 것이다.

위와 같은 내용을 확인하고 상기 사망 재해자의 유족분들은 늦게나마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를 청구했고, 그 결과가 최근에 나왔는데 불승인이었다. 다른 건 모두 인정했다. 본래의 업무인 운전 업무가 아닌 상차업무를 하다가 사고가 난 것도, 관행적이고 묵시적으로 해당 사업장의 지시가 있어 그러한 상차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다. 사업자 등록이 재해자 본인 명의로 돼 있지 않아서 노동부 지침 자체가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실제 해당 사고 사업장에서 운전업무와 상하차 작업을 수행한 사람이 재해자인데도 단지 서류상 사업자 등록이 돼 있지 않아서 산재 적용을 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해당 사건을 진행한 대리인으로서 위와 같은 공단의 결정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실질을 봐야 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형식만을 따져 산재 적용 여부를 판단하는 것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일하다가 다친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 사람은 형식적으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으니 근로자가 아니어서 산재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아무런 보호도 받을 수 없는 것인가. 산재보험법의 가장 근본적인 취지는 ‘일하다가 다치거나 아픈 사람을 제대로 보호해서 다시 생계를 꾸려 갈 수 있도록 충분한 재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아닌가. 도대체 그 사람이 서류상으로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가 그렇게 중요할까. 노동부 지침에서도 계약 내용(운전업무)과 다른 일을 하다가 사고가 발생한 경우 해당 운전자는 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에서 일용직으로 채용한 것으로 보고 산재보험법을 적용한다고 돼 있다. 실제 상하차 작업을 했고, 해당 사업장의 관행적이고 묵시적인 지시가 있었다면 상하자 작업을 할 당시에 해당 사업장에 채용된 근로자로 보고 산재를 적용하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형식상 사업자 등록이 되지 않은 운전자이니 산재 적용이 안 됩니다’라고 결정하는 것은 결국 따지고 보면 화물 운전자와 같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에 대한 허울뿐인, 아니면 면피용 조치가 아닐까 싶다.

나도 최근에야 알았다. 화물 운전노동자들이 상하차 작업을 하다가 다치거나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화물 운전노동자들은 크고 무거운 물건을 많이 운반한다. 그 물건들을 싣고 내리는 과정에서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면서 발생하는 사고들은 매우 큰 사고들이다. 사고 특성상 발생했다 하면 입게 되는 피해가 중상 아니면 사망에 해당할 정도다. 적어도 일하다가 다치면, 그리고 그 회복을 국가가 책임지도록 하고 있고 최대한 보장하도록 지침으로까지 정하고 있으면 형식보다는 실질을 보아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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