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중앙일보가 ‘코로나 1년, 우린 더 강해진다’는 문패를 달고 신년 기획기사를 썼다. 중앙일보는 지난 4일 두 번째 기획기사에 ‘인류 구원한 백신 어벤저스는 여성·흑인·이민자였다’(8면)는 제목을 달아 코로나19 백신 개발 주역들을 소개했다.

바이오엔테크 연구자로 화이자와 함께 코로나19 백신을 공동개발한 헝가리계 미국 여성 카탈린 카리코 박사와 바이오엔테크를 창업한 터키 이민 2세대 부부, 모더나 백신 개발을 주도한 미국 국립보건원의 30대 흑인 여성 연구원 키즈메키아 코벳 박사를 소개했다.

중앙일보 지면에 나온 네 사람은 백인 주류 인사가 아니다. 그렇다고 백신 개발을 주도한 이들이 여성과 흑인, 이민자라는 게 뉴스거리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단일민족 순혈주의에 물든 우리 눈에만 이색적이지, 다문화 국가에선 뉴스거리도 안 된다. 여성과 흑인, 이민자를 강조하는 게 오히려 더 불편했다. 미국은 원래 이민자의 나라였기에 헝가리 혈통이라고 밝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성별로 나누고 피부색으로 구별하고 혼혈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만 확대재생산하는 건 아닐까.

35년째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재발한 암 치료도 마다하고 혹한의 추위에 부산에서 서울까지 걷기 시작했다. 86년 노조 대의원으로 어용노조의 행태를 꼬집는 유인물을 만들어 배포하다가 공안당국에 끌려가 고문받고 해고된 그는 2009년 행정안전부 산하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복직권고 결정을 받았다. 위원회는 지난해 9월에도 한진중공업에 복직을 다시 권고했지만 회사는 거부했다.

지난해 여름 암 투병 중에도 한진중공업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있는 서울 여의도까지 와서 복직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던 그는 “20대 중반에 해고돼 환갑이 지났는데, 해고된 채 죽으면 저승 가서 제대로 자리도 잡을 수 없을 것 같다”며 간절히 복직을 희망했다.

그의 복직을 염원하는 연대자가 하나둘 늘어나는 새해 벽두에 조선일보는 ‘민노총, 김진숙 복직·5억 요구해 놓고 딴소리’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여기서 조선일보는 “부당해고가 아니라 전보 조치에 불만을 품고 7일간 출근을 안 해 해고됐다”는 회사의 입장을 담았다. 만약 이게 사실이면 복직을 권고한 정부 위원회는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다.

A4보다 작은 종이에 손으로 직접 써 복사한 유인물을, 그것도 회사 비난이 아니라 어용노조를 비난한 유인물을 출근길 동료에게 뿌렸는데, 경찰이 잡아가고 회사는 부당전보하고 이를 따르지 않았다고 해고한 게 실체적 진실이다. 군사정권 때나 가능했던 일이다.

언제나 노동자 대신 기업주 이해만 대변해 온 이 신문이 어쩌다 한 번씩 노동자를 소재로 기사 쓸 땐 늘 이런 식으로 어깃장만 놓는다.

새해에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80여명이 집단으로 계약해지됐다. 사실상 해고였다. 대기업 LG에서 일어난 혹한의 파렴치함에 모두들 분노했다. 그러나 LG트윈타워 농성 노동자 얘기는 한겨레와 경향신문 정도만 지면에 보도했다. 한겨레는 지난 4일 ‘거리에서 싸우는 이들도 소외되지 않는 새해를’이란 제목의 사설로 이들을 다뤘다. 같은날 한겨레 7면엔 “새해에는 모든 일이 언제나 설레고 즐겁도록 LG가 함께하겠습니다”는 LG그룹 전면광고도 실렸다. 그 다음날 이 신문 11면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온전한 제정을 촉구하는 각계 대표자 선언도 전면광고로 실렸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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