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이 그리 상쾌하고 가볍지만은 않은 2021년이다. 하지만 옆에 있는 이들과 함께 묵묵히 또 그렇게 한 해를 보내면 되지 않을까 하며 새해 첫 날을 맞이했다. 그리고 이렇게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할 즈음이면 늘 생각나는 이들이 있다.
2015년 노동절을 앞두고, 서울 구로구에 있는 한 요양병원 치료사들이 최초의 치료사 노조를 만들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어떤 이유로든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쓸 수 없게 된 이들이 몸의 기능을 회복하고 조금이라도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 치료사들. 여느 병원이 모두 그렇겠지만 사람의 몸을 깨우고 살리는 일을 하는 곳에서 무엇보다 사람이, 그리고 건강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막연한 기대 혹은 바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채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부푼 꿈을 안고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병원에서 5년을 채 근무하지 못하고 퇴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환자 한 명 한 명을 치료하면서 중간에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환기도 통풍도 제대로 되지 않는 치료실에서 일하다가 곳곳이 아파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일할 수밖에 없고, 연차도 마음대로 쓰기 어려운 곳에서 오래 일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여성 치료사들이 많은 병원 일상에서, 회식자리에서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반복되는 성희롱에도 문제제기하기 어려운 현실은 치료사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오래 일할 수 있는 병원을 만들자는 일념으로 조합원 30명이 함께 노조를 만들었다. 그랬더니 일주일 뒤 조합원 70명의 제2 노조 만들어졌고, 병원은 제2 노조와 교섭을 하겠다고 했다. 기존 노조는 노조활동 시작부터 대화와 교섭의 대상에서 배제했다.
제2 노조가 만들어진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피켓팅을 하고 유인물을 배포했다는 이유로 노조 간부들에게 9천만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제기됐다. 중간관리자의 노조혐오 발언은 일상다반사였다. 집회에서의 발언, 유인물 문구,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글을 이유로 업무방해·명예훼손으로 노조 집행부 구성원을 고소하는 것도 예삿일이었다.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패소하고, 고소한 사건이 모두 무혐의로 나와도, 조합원들에 대한 일방적이고 반복적인 징계에 대해 부당징계·부당노동행위라는 판정이 반복돼도 노조에 대한 혐오와 괴롭힘은 멈추지 않았다.
병원은 1년 단위로 연봉계약을 하면서도 정규직과 아르바이트 외에 다른 방식으로는 채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2018년에 이르러 갑자기 ‘계약직’이라면서 계약기간 2년이 되면 평가를 거쳐 재계약 여부(정규직 전환)를 결정한다며 비조합원들은 별다른 심사 없이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조합원들에 대해서는 계약해지 통보를 하기에 이르렀다. 지방노동위원회·중노위·법원에서 모두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되고 나서야, 그렇게 1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해고 시도를 멈췄다.
50분간 환자를 치료하고 다음 환자가 오기 전 10분 동안 기록을 정리하고 치료 준비를 하느라 쉴 틈 없이 움직여야 하는 치료사들에게, 환자 치료에 전념하고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데에도 24시간이 모자란다. 그러나 병원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한 자료를 만들고 소송과 고소 사건에 대응할 준비를 하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우기 일쑤였다. 자신들의 노동환경을 건강하게 바꾸고, 부당한 상황들을 바로잡는 것이 곧 환자들에게 최선의 치료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일념으로 지난 6년간 꿋꿋하게,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치료사들은 많은 것을 바꿔 냈다. 성희롱인지 아닌지 스스로 고민할 필요조차 없이 내뱉었던 중간관리자들의 발언은 징계 대상이 됐다. 조합원과 비조합원, 혹은 조합원과 제2 노조 조합원 사이의 끊임없는 차별의 부당함도 곳곳에서 확인됐다. 고소고발 남발도 줄어들었다. 여전히 ‘소수노조’라는 지위에서 일상적인 노조혐오에 부딪치고 있지만, 꿋꿋이 싸우고 그 자리를 지키는 이들의 존재만으로도 이미 매일매일 일상에서의 승리를 경험하고 쌓아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현장에서 겪어야 할 어려움과 이를 모두 안고 싸워야 하는 현실의 무게감은 감히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다만 그 꿋꿋하고 묵묵한 모습을 보며 가슴 한켠에 힘을 받는, 그리고 함께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꼭 전하고 싶었다.
새해에도 함께, 그렇게 묵묵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