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업무 중 재해로 숨진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씨와 그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2년 연속 올해의 인물 1위로 선정됐다. 하루에 7명, 한 해 2천400여명이 일터로 출근했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현실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늑장을 부리면서 여전히 위험 노동은 아래로 아래로 흘러 전가되고 있다. 간접고용 하청·특수고용직 노동자의 부고가 끊일 새가 없다. 지난 9월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화물노동자가 석탄을 운반하는 스크루 컨베이어에 깔려 숨졌고, 두 달 후 영흥화력발전소에서도 화물노동자 심장선씨가 업무 중 추락사했다. 유족이 가족을 잃은 슬픔을 누른 채 발벗고 뛰어야 원청에서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 약속을 들을 수 있다는 점도 2년 전과 판박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요구하며 단식
<매일노동뉴스>가 노사정·전문가 100명에게 물었더니 가장 많은 이들이 올해의 인물로 고 김용균 태안 화력발전소 비정규 노동자와 그의 어머니 김미숙 이사장을 꼽았다. 47명이 이들을 선택했다. 김미숙 이사장은 24명, 고 김용균 노동자는 23명이 선택했다. 두 사람의 이름을 함께 적은 이들도 있다. 김명환 전 민주노총 위원장(33표)과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27표)보다 각각의 표는 적었으나 한국 사회에서 모자가 상징하는 의미가 다르지 않다고 봐 표를 합해서 계산했다.
김미숙 이사장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며 지난 11일부터 국회 앞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아들처럼 일터에서 다치고 죽는 노동자가 더 이상 나와서는 안 된다는 의지다. 법안에는 중대재해 발생시 책임 있는 사업주를 처벌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의 미온적인 태도로 정기국회에서 법안 통과가 무산됐다. 김미숙 이사장과 고 이한빛 PD 부친 이용관씨가 단식농성을 한 지 14일 만인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심의에 착수했지만 갈 길은 멀다.
‘무위’로 끝난 김명환 전 위원장의 도전
비정규직 조직화 저변 넓히는 김동명 위원장
김명환 전 위원장(33표)과 김동명 위원장(27표)은 2·3위에 올랐다. 노동계는 올해 코로나19라는 전례 없는 위기와 마주했다. 사회적 대화 참여를 공약으로 걸고 당선된 김명환 집행부가 코로나19로 발생한 노동자 피해를 해결하기 위한 ‘코로나19 극복 노정협의 TF’를 제안하면서 이목이 집중됐다. 그런데 원포인트 노사정 합의는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 반대 벽에 부닥쳐 이뤄지지 못했다. 결국 김명환 위원장은 사퇴했고 원포인트 노사정 합의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협약’으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본위원회에서 의결됐다.
김동명 위원장은 지난 1월 “1노총의 자존심을 되찾겠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27대 한국노총 위원장으로 당선했다. 지난해 1노총 자리를 민주노총에 내준 한국노총은 조직화에 박차를 가했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고 있지만 조직되지 않은 비정규직·특수고용직·프리랜서 등을 조직화하려 전국연대노조를 지난 10월 출범시켰다. 더불어민주당과 고위급 정책협의회를 열고, 노동존중실천 국회의원단을 구성하는 등 노정교섭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50주기 맞아 재조명된 전태일 ‘풀빵정신’
정년 앞둔 김진숙 해고노동자의 복직투쟁
전태일 열사(23표)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23표)이 공동 4위에 올랐다.
올해는 평화시장 재단사로 일했던 청년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산화한 지 50년이 되는 해다. 정부는 지난 11월13일 열린 열사 50주기 추도식을 앞두고 열사에게 무궁화훈장을 추서했다. 코로나19로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와 특수고용직을 비롯한 비정규직이 소리 없이 스러져 가자 열사의 ‘풀빵 정신’이 재조명됐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도 근로기준법 적용을 확대하고 특수고용직의 노조할 권리를 담은 전태일 3법(민주노총)과 5·1플랜(한국노총) 운동을 펼쳤다.
28일 기준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에게 정년까지 남은 시간은 4일이다. 1986년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대공분실에 끌려가고 35년째 회사로 돌아가지 못한 김진숙 한진중공업(당시 대한조선공사) 해고자는 복직투쟁 중이다. 하지만 한진중공업은 부당해고 기간에 따른 임금 산정이 ‘업무상 배임’에 해당한다며 복직을 거부하고 있다.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오체투지, 연대 단식 등을 통한 복직 투쟁을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대책 쏟아 낸 노동부”
이재갑 장관과 문성현 위원장 공동 6위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과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이 11표씩 득표해 공동 6위를 기록했다.
코로나19로 얼어붙은 경기 탓에 고용위기가 심화하자 노동계의 시선은 노동부 정책에 쏠렸다. 이재갑 장관은 고용유지지원금 정부 지원금 확대, 특수고용직과 프리랜서 노동자를 위한 긴급고용안정지원금 지급 등의 정책을 내놓았다. 장기적으로 특수고용직·프리랜서·자영업자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하는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를 단계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혔고, 최근 국회가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일부 약속을 지켰다. 이 장관은 전태일 열사 묘역을 참배한 최초의 현직 노동부 장관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사회적 대화는 코로나19로 위기를 맞은 한국 사회를 유지하는 열쇠 역할을 했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이 노사정·전문가의 표를 받은 까닭이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노사정 협약도 그 일환이다. 관광산업이나 의료인력 확충 같은 산업별 이슈를 경사노위로 끌어들였다. 지난해 말 복직을 앞두고 무기한 휴직을 통보받았던 쌍용차 노동자 46명의 복직, 성암산업 집단해고 사태 같은 문제에도 관여했다.
올해만 16명, 일하다 목숨 잃은 택배노동자
문재인 대통령과 택배노동자가 각각 9표를 얻어 공동 8위를 차지했다. 2017년 올해의 인물 1위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후퇴하는 노동정책처럼 해를 거듭하며 순위도 하락하고 있다. 2021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1.5%로 역대 최저로 결정됐고, ‘소득주도 성장’은 코로나19 경제 위기 속 사라진 단어가 됐다.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을 이유로 노조법 개악을 시도한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택배노동자는 올해 어느 때보다 많은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택배노동자 16명이 잇따라 과로사 추정 죽음을 맞은 탓이다. 택배노동자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노동·시민·사회 단체의 움직임은 2021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숨진 지 103일 만인 지난 3월 영면한 고 문중원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기수가 10위로 꼽혔다. 82년 만에 무노조 경영을 사과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 뒤를 이어 올해의 인물 11위를 차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