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임대료로 먹고사는 독일 빌딩주협회는 지난 3월 말 코로나 셧다운 기간과 이후 3개월 동안 임대료를 50%로 줄인다고 결의했다. 독일 정부는 지난 4~9월까지 6개월 동안 임대료 체불을 이유로 임대차 계약 해지를 요구할 수 없도록 했다.

독일 정부의 이런 정책에 ‘아디다스’가 임시폐쇄한 매장의 임대료 지급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아디다스에 비난이 쏟아졌다. 영세 자영업자를 위한 정책에 거대 스포츠기업이 숟가락을 얹으려 했으니, 시민들 비난이 빗발쳤다. 결국 아디다스는 사과하고 임대료를 내겠다고 물러섰다.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고, 기업 이미지 실추도 덤으로 얻었다.

미국에선 세입자들이 나서 임대료를 유예하거나 깎아야 한다는 ‘월세 파업’을 시작했다. 민주당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의원은 월세 파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프랑스와 스페인도 세입자 보호를 위해 강제 퇴거 금지와 임대료 납부 유예 같은 조치를 취했다.

그동안 착한 임대인 운동에 기댔던 우리 정부가 자영업자 임대료 대책을 언급한 건 지난 14일이었다.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영업이 제한, 금지되는 경우 매출 급감에 임대료 부담까지 고스란히 짊어져야 하는 것이 공정한 일인지에 대한 물음이 매우 뼈아프게 들린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다음날 1면에 “문 대통령 ‘자영업자 임대료 대책 시급’”이란 제목으로 이를 보도했다. 대통령의 말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세상 모든 게 멈췄는데 임대료는 그대로다. 영세 자영업자는 사경을 헤매는데 조물주 위의 건물주는 어떤 피해도 입지 않았다. 대통령은 이를 “공정한 일인지 모르겠다”며 돌려 말했다. 경향신문은 이날 6면에도 ‘장사 멈추면 임대료도 멈춰야 … 정치권 자영업자 대책 속도’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6면 기사는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임대료 멈춤법’(임대차보호법 개정안)과 김종철 정의당 대표의 ‘대통령 긴급경제명령 발동’ 촉구 발언 등을 소개했다.

동아일보도 경향신문처럼 1면과 6면에 같은 내용을 소개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이를 정반대의 관점으로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대통령 발언에 “정부 여당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 삼아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입법에 나서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걱정했다.

동아일보는 6면 해설기사엔 “文대통령 임대료 제한 공론화 … ‘생계형 건물주 어쩌라고’ 반발”이란 제목을 달아 이동주 의원 법안이 “과도한 재산권 침해 등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6면 기사엔 건물주와 부동산 업계 관계자 발언이 등장한다. 건물주는 “생계형 건물주도 많다. 임대료도 전혀 받지 못하면 세금은 무슨 돈으로 내라는 건가”라고 분노했다. 부동산업자는 “당장 월세 수익이 없으면 생활이 곤란해지는 임대인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같은 보수신문은 평소엔 영세 자영업자와 서민을 위하는 것처럼 포장하다가 결정적 순간에선 꼭 서민 등에 칼을 꽂는다.

‘생계형 건물주’라니, 말은 참 잘 지어낸다. 동아일보가 말하는 생계형 건물주란 자신의 건물에서 자신도 장사를 하면서 남은 점포는 세를 놓아 임대료를 받는 사람을 뜻한다. 어디 갖다 붙일 데가 없어, 건물주 앞에 ‘생계형’이란 수식어를 붙여 놓고, 영세 소상공인과 비슷한 처지라고 우기는가.

한국에선 보수신문이 꼭 ‘아디다스’ 같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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