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고용불안에서 노동 개악까지, 노동자들에게는 험난한 시기가 계속되고 있다. 그런 와중에 국방과학연구소 노동자들은 또 다른 측면에서 이상하고 이해하기 힘든 난관에 부딪쳐 있다. 국방과학연구소법 14조(임직원의 지위) 때문이다.
기타공공기관인 국방과학연구소는 ‘국방에 필요한 무기 및 국방과학기술에 대한 기술적 조사, 연구, 개발 및 시험 등을 담당해 국방력 강화와 자주국방 완수에 기여’하겠다는 목적으로 1970년에 설립했고, 그 근거법이 국방과학연구소법이다. 그런데 이 법 14조는 연구소의 임직원에 대해 국가공무원법 7장 복무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준용되는 국가공무원법 65조는 공무원의 정치운동 금지, 66조는 공무원의 노동운동 및 집단행위 금지를 정하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 소속 노동자는 어디까지나 민간인임에도, 국가공무원법이 준용돼 정치운동·노동운동·집단운동이 금지되는 상황인 것이다.
이렇게 민간노동자의 노동 3권을 전면 제한하는 유사한 입법 사례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또 있었다. 옛 청원경찰법이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청원경찰은 공무원이 아니므로 헌법 33조1항에 따라 원칙적으로 노동 3권이 보장돼야 하는 점, 청원경찰에 대해 직접행동을 수반하지 않는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인정하더라도 시설의 안전 유지에 지장이 된다고 할 수 없는 점, 헌법은 주요 방위산업체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단체행동권만을 제한하고 있고, 경비업법은 무기를 휴대하고 국가중요시설의 경비 업무를 수행하는 특수경비원의 경우에도 쟁의행위만 금지하고 있는 점 등을 근거로, 모든 청원경찰의 노동 3권을 획일적으로 제한하고 있는 옛 청원경찰법에 대하여 위헌으로 판단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헌법재판소 2017. 9. 28. 선고 2015헌마653 전원재판부 결정). 그 이후 개정된 청원경찰법은 청원경찰의 단결권·단체교섭권을 보장하고 있다.
1천여명이 넘는 국방과학연구소 노동자들은 지난해 국방과학연구소노조(현 공공연구노조 국방과학연구소지부) 설립을 위한 설립총회를 연 뒤 관할 노동청에 설립신고를 했다. 노동청에서는 설립신고를 수리한 뒤 노조 현황 정기통보서 및 노동단체카드 작성과 제출을 요구하는 등 노조설립의 적법성을 전면적으로 인정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노조설립 요건은 신고로 족하다. 이미 국방과학연구소노조는 헌법·노조법상 노조로 적법하게 설립돼 그 권리를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연구소는 국방과학연구소법 14조를 들어 노조설립 자체가 잘못됐다며, 1년 반이 넘는 기간 동안 노조의 교섭 요청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노동청이 여러 차례 위 청원경찰법 헌법불합치 결정 사례 등을 근거로 국방과학연구소노조 설립은 적법하다는 취지로 회신했으나, 국방과학연구소법 14조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상 국방과학연구소노조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노조로 인정할 수 없다는 연구소측의 입장은 완고하다.
헌법 33조1항은 모든 노동자들에게 노동 3권이 기본권으로서 인정된다고 천명하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 노동자들이 2항의 공무원도, 3항의 주요 방위산업체 종사 노동자들도 아닌 이상 이들에게는 헌법 33조1항이 적용된다. 수백 번 양보해서 국방과학연구소법 14조가 국가공무원법을 준용하는 취지를 고려한다 하더라도, 공무원들은 이미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공무원노조법) 제정에 따라 적어도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인정받고 있다. 공무원노조법의 한계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민간노동자인 국방과학연구소 노동자들에게 공무원에 대한 보장 수준보다도 더 후퇴해 노동 3권을 전면 박탈할 수 있다는 정당성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국방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에게 노동 3권을 보장하면 정말 큰일이 나므로 일체 금지해야 한다’는 생각이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지는 이상한 세상이 아니고서야.
공공연구노조와 국방과학연구소 노동자들은 연구소측의 교섭 거부에 맞서 1년이 넘게 각종 투쟁을 벌여 오고 있다. 국방과학연구소 노동자들이 구시대적 족쇄에서 벗어나 온전한 노동 3권을 실현할 수 있는 세상이 하루빨리 도래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