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새벽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오후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악안을 통과시켰다. 언론들은, 심지어 매일노동뉴스마저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이라고 쓰고 있지만 환노위를 통과한 개악안은 ILO 협약과는 상충되는 내용들이다. 가장 우려되는 몇 대목만 지적해도 아래와 같다.
첫째, 특수고용을 포함해 모든 노동자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지난 십수 년간의 ILO 권고는 철저히 무시당했다. 10만명의 국민청원으로 발의된 노조법 2조 개정안은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고, 노조로 보지 않는 경우를 정한 노조법 2조4호 단서조항이라도 삭제해야 한다는 권고도 수용되지 않았다.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는 노조설립 신고제를 개선하는 내용도 담기지 않았다.
둘째, 개악안이 해고자·실업자의 기업별노조 조합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지만, 해고자·실업자는 노조의 임원·대의원이 될 수도 없고,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 산정이나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서 조합원수를 산정할 때에도 제외되는 ‘유령’조합원이 될 수 있을 뿐이다. 애초 ILO가 권고한 것은 조합원 자격, 노조 운영 등을 해당 노조가 자주적으로 정해야 하고 국가나 사용자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었는데, 이 부분에서 개악안이 달라진 점은 없다.
셋째, 개악안은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3년으로 연장함으로써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와 맞물려 노동 3권에 재갈을 물릴 수 있게 했다. 현재도 교섭대표노조가 되지 못한 노조는 교섭대표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 유효기간 동안 교섭도 할 수 없고, 타임오프를 인정받아 조합활동을 하는 것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개악안이 시행되면 사용자와 어용노조가 담합해 최소 4년간 교섭대표노조가 되지 못한 노조의 노동 3권에 ‘합법적’으로 제약을 가할 수 있다. 이것 역시 소수노조라도 노동 3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ILO 및 유엔 사회권위원회 권고와 상충되는 부분이다.
넷째, 정부법안의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지적됐던, 사업장 내 점거 제한, 비종사자 조합원(해고자,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 등)의 사업장 내 노조활동의 제한도 대부분 존치됐다. 사업장 내 점거를 전면 금지하는 문구는 삭제했지만 “사용자의 점유를 배제하여 조업을 방해하는 형태의 쟁의행위 금지” 규정이 신설된 것이 그 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안에서 몇 가지 문구들을 삭제한 것을 자화자찬하고 있지만, 이는 마치 집에 강도가 들었는데 죽이겠다고 협박만 하고 죽이진 않았으니 칭찬해 주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애초 비종사자 조합원의 권리 제한,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사업장 점거 금지 등은 ILO 기준과 무관하게 사용자단체의 소원 수리 차원에서 포함된 것들이다.
이번 개악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설사 ILO 87호·98호 협약을 비준한다 해도 우리의 노동현실에는 의미 있는 변화가 없게 될 것이다. 여전히 노조설립은 허가제로 운영되고,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대법원까지 가는 지리한 법적 다툼 끝에야 노조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노조의 조직·운영에 관한 국가의 간섭은 지속되고, 산별노조·비정규직노조에 대한 사용자의 차별과 부당노동행위도 정당화될 것이다. 창구단일화 절차를 무기로 자주적 노조를 무력화하는 사용자의 노조파괴 행위도 더욱 쉬워질 것이다.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했다는 구실로 최저임금법을 개악하고, 본래 원칙으로 지켜져야 했을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를 입법했다는 구실로 근로기준법을 개악하고,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해 필요하다며 이제 노조법을 개악한 것이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 사회’의 실체다. 거대 여당은 문재인 정부의 청부입법을 통과시킬 때에만 힘을 발휘할 뿐, 노조법 2조 개정을 통한 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 노동 3권 보장,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노동기본권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입법 요구에는 듣는 시늉만 하고 있다. 이제 정부·여당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할 때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