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부터 10일까지 16일간은 유엔이 정한 여성폭력추방 주간이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세 자매가 독재에 항거하다 정권의 폭력으로 숨진 11월25일을 기념해 1981년부터 시작된 ‘세계여성폭력추방의 날’부터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한 12월10일까지를 세계여성폭력추방 주간으로 정하고 세계 곳곳에서 여성폭력에 반대하고 여성인권을 실천하기 위한 행사를 진행한다. 1991년부터 시작돼 올해 30년을 맞았다.
그런데 유엔이 밝힌 행동주간(16 Days of Activism Against Gender-based Violence)은 더 이상 여성폭력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행동주간은 여성폭력이 아닌 ‘젠더기반 폭력’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이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단지 한 여성에게 발생된 개별화된 사건이 아니라 성별을 이유로 한 젠더기반 폭력이라는 점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2017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여성차별철폐협약에 대한 일반권고 35호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Violence Against Women)’이라는 개념은 그러한 폭력이 젠더에 기반을 두고 발생된다는 사실에 중점을 둬, 폭력의 원인과 효과를 드러내 주는 ‘여성에 대한 젠더기반 폭력(Gender-based violence against women)’으로 그 의미를 분명히 해야 함을 밝힌 바 있다. 폭력이 ‘왜 발생하는가,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 하는가’의 문제에 주목하지 않은 채 ‘누구에게 일어났는가, 누구를 지원해야 하는가’만을 보게 되면 여성을 또다시 피해자화(victimization)하기 때문이다.
일터를 둘러싸고 발생하는 젠더기반 폭력과 괴롭힘도 마찬가지다. 업무가 진행되는 과정이나 결과에서 여성이 경험하는 폭언이나 폭행, 위협, 비합리적인 행위와 성희롱 사건들은 사회적인 성별고정관념, 성차별적 권력구조와 조직문화, 젊은 여성에 대한 성희롱과 나이 든 여성에 대한 비하, 장애여성과 이주여성에 대한 폭력 등 다양한 차별요인들이 결합된 성차별을 통해 강화되고 유지된다.
지난해 국제노동기구(ILO) 100주년 총회에서 채택된 ‘일의 세계에서의 폭력·괴롭힘에 관한 협약(190호와 206호 권고)’에서는 젠더기반 폭력과 괴롭힘에 취약한 노동자들이 일의 세계에서 발생되는 폭력과 괴롭힘에 더 쉽게 노출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ILO는 폭력·괴롭힘 협약 논의를 여성폭력만이 아니라 젠더기반 폭력과 괴롭힘으로 확장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협약은 성고정관념과 복합적이고 교차적인 차별, 불평등한 성별 권력관계 등 폭력과 괴롭힘의 원인과 위험요소를 고려한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접근법, 젠더기반 폭력과 괴롭힘의 원인과 효과에 반응해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법’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올해 1월 우루과이와 피지, 두 나라가 비준을 하면서 190호 협약은 내년 1월부터 발효된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협약 비준과 국내법적 이행에 관한 논의 자체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올해 처음으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여성폭력방지법)에 따른 여성폭력 추방 주간을, 성폭력·가정폭력 추방 주간을 통합해 운영한다. 하지만 ILO 일의 세계에서의 폭력·괴롭힘에 관한 협약 비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젠더기반 폭력을 금지한 상태에서 여성폭력에 대한 대응행동을 말하지 않으면 그저 여성폭력은 또 다른 배제의 언어로 치부될 수 있다. 4일 국제건설목공노련(BWI)과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은 유엔 행동주간에 맞춰, ILO 190호 협약의 국내이행을 위해 노동조합의 연대와 행동계획을 밝히는 국제토론회를 개최한다. 여성에 대한 젠더기반 폭력과 괴롭힘을 방지하고 ‘안전한 일터와 안전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 노동조합이 만들어 갈 공동행동에 주목해 주길 당부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