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일한 여성가장노숙자 쉼터 '내일의 집'

여성노숙자 쉼터 '내일의 집'에서 만난 송아무개씨는 그 동안 동사무소에 다니면서 전입신고 받는 일을 해오다가 최근 마포에 있는 제과복지관에 취직해 '독립선언'을 눈앞에 두고 있다. 1년여의 쉼터 생활을 마치고 다시금 사회를 향한 재기를 꿈꾸고 있는 송씨에게 물어봤다.

"어때요? 여기 생활이 도움이 됐나요?"

송씨는 "그럼요. 들어오기 전에 비하면 건강도 좋아지고 심리적으로도 훨씬 안정을 찾았어요. 가족같은 느낌이 들어서인지 삶에 대한 의욕도 새롭게 생기고 이제는 혼자 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라고 밝게 대답했다.

쉼터에 찾아갔을 때 남다르게 바빠 보이던 조아무개씨는 면접을 보러가기 위해 준비중이었다. 공공근로를 하다가 쉬면서 요리도 배우고,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지 스스로를 시험하는 기간이란다.

또 다른 여성노숙자 최아무개씨는 현재 의류노점상을 하면서 자활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사회에서 소외받는 노숙자라는 위치를 벗어버리고 삶에 대한 새로운 희망을 만들고 있는 이들이 있는 곳은 바로 아이와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여성가장노숙자 쉼터인 '내일의 집'이다.
그러나 밝은 얼굴을 하고 있는 여성노숙자들의 모습과는 달리 '내일의 집' 현실과 여성노숙자 문제가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성노숙자' 쉼터, 그리고 '내일의 집'

전철을 타고 뚝섬역에 내려 마을버스를 또 타야만 닿을 수 있는 한 골목. 여기저기 전깃줄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비싼 집들이 줄줄이 들어선 동네들과 사뭇 다르게 서민들 삶의 내음이 물씬 묻어나는 성수 2가. 그 곳에 가면 만날 수 있는 것이 바로 아이와 엄마가 함께 노숙자가 된 이들이 살고 있는 '내일의 집'이다.

성수삼일교회 정태효 목사가 IMF 직후인 1998년 9월 전세를 얻어 문을 연 '내일의 집'에는 여성노숙자 34명과 아이들 16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조그마한 마당을 지나 실내에 들어선 순간 방 2개와 거실하나가 전부인 좁디좁은 공간에서 이 많은 인원이 생활하고 있다는데 내심 놀랐다.

"교회에 딸린 쪽방이 하나 더 있어요"

방마다 사물함 같은 옷 박스가 주욱 서있고 여기저기에는 아이들이 흩어져 있는 장난감, 크레파스, 동화책들이 즐비해 누우면 발조차 뻗을 수 없을 정도다.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노숙자 쉼터 대부분은 남성노숙자를 위한 것이어서 여성노숙자가 쉴 수 있는 곳은 가족노숙자 쉼터 4곳, 독신여성노숙자 쉼터 4곳을 포함해 '내일의 집'밖에 없다. 더구나 '내일의 집'은 여성가장이 아이를 데리고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유일한 쉼터라는 사실을 알고는 더 할말이 없어졌다.

*"나가라"는 집주인 호통에 어려움 겪기도

이런 '내일의 집'에 최근 위기(?)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지난해 8월경 집주인으로부터 "집을 2억원에 사든지 딴데로 나가라"는 내용증명 보내와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형편에 시름이 덥친 것이다.

식구가 많은데다 아이까지 여럿이다 보니 조용할 날이 없는 '내일의 집'을 주민들이 달가워 할리 없다. 민원도 많고 노숙자시설을 기피하는 시선도 겹쳤던 것이다.

"처음 통보가 왔을 때 서울시에서 5억원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해서 이 곳 저 곳 알아보고 다니는 사이 '노숙자문제는 장기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지원할 수 없다'고 서울시가 방향을 바꿨다.

그렇다고 포기할 것 같으면 시작을 하지 않았을 정목사다.

"모두 '길거리로' 나 앉거나 뿔뿔히 분산 수용해야 한 판이어서 끈질기게 설득했다." 정목사의 설득에 결국 서울시가 넘어갔다. 보증금 4,000만원을 추가지원해주고 월세지원을 더해 전세권 설정지원을 약속한 것이다.

집주인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1년간을 버틴 끝에 가까스로 사태를 해결하게 됐다.

'전화위복'이라고 할까? '내일의 집'이 새로 옮겨갈 곳은 3층짜리 건물 2·3층에 방이 4개 그리고 거실이 하나 딸려 있어 지금보다 훨씬 조건이 좋은 곳이다. 그러나 아이들까지 같이 생활하고 있는 '내일의 집'의 현실을 고려해 정목사는 더 욕심을 내본다.

"1층도 전세를 얻어 아이들의 놀이방을 만들어 주고 싶다. 놀이 시설 설치비가 500만원에서 1,000만원정도 든다는 데 어떻게든 해볼 작정이다"

*"남성중심의 노숙자 정책 전환할 때"

정목사는 정부의 노숙정책에 대해 꼬집는다.

"정부의 노숙자 정책이 남성중심 일변도인데다 여성노숙자의 존재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식까지 있어 쉽지 않다. 여성노숙자에 대해 할 수 있는 것과 해야할 것이 많은데, 문제는 돈이다."

상황이 이런데는 '노숙자 = IMF'라는 등식과, 가장으로서 실직의 고통을 못 이긴 '남성들'이 노숙자가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이란다. 이런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에 상당수의 여성노숙자가 존재함에도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노숙자들 중 상당수는 남편의 폭력에 의해 집을 나온 경험을 가지고 있다. 또 가정경제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었던 여성이 남편의 폭력을 못 이겨 노숙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들 대부분은 처음부터 노숙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찜질방, 기도원 같은데를 이리저리 떠돌다가 결국 노숙자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떠돌다가 겨우 들어온 곳이 '내일의 집'인 셈이다.

그래도 '내일의 집'에 들어 온 여성노숙자들은 행복한 편이다. 다른 시설은 머물 수 있는 기간도 짧고 규칙도 엄격하다. 이 곳은 비교적 길게 있을 수 있고 자유로운 편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곳은 아이와 같이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닌가. 그래서인지 이 곳 노숙자들이 가장 먼저 하는 말 중에 하나가 "가족 같은 분위기라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거였다.

이러한 분위기가 '내일의 집'에서 3년 동안 200여명의 노숙자들이 재활할 수 있게 만들 힘이다. 그러나 이런 곳이 정책적으로 지원되기보다는 '뜻있는' 개인의 노력에만 의존하고 있다.

아이와 엄마가 행복하게 새 생활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로서 여성노숙자 쉼터가 되게 하는 것, 그러기 위해 이 좁디좁은 공간과 열악한 시설을 벗어나는 것, 그 것이 '내일의 집'의 생각이다.

지금 이 시간도 한 여성가장노숙자는 어디선가 아이를 품에 안고 길거리를 헤메고 있을지 모른다. 정목사의 마음은 지금이라도 달려가 데려오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안정적인 정부지원을 받지 못하는 '내일의 집'은 데려와도 같이 있을 곳이 없다. 그것이 안타까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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