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선호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대상판결 : 대법원 2020. 10. 29. 선고 2017다263192 판결

1. 사건의 경위

금속노조는 2014년 9개 사업장 교섭대표노조들이 2014년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 체결 과정에서 의견수렴 의무, 정보제공 의무, 잠정합의안 설명 의무 등을 다하지 않은 점과 잠정합의안 총회인준 투표에서 금속노조 소속 조합원들을 배제한 것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9조의4 1항의 공정대표의무 위반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했다. 3개 사업장에 대해서는 사용자와 기업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에 대해 무효를 구하는 소도 제기했다.

1심과 2심을 거치면서 소 취하나 상소 포기 등이 있었고, 대법원에서는 6개 사업장의 공정대표의무 위반과 손해배상책임이 문제가 됐다. 금속노조는 4개 사업장(두산모트롤·한진중공업·두산인프라코어·AVO카본코리아)의 교섭대표노조에 대해 상고했고, 2개 사업장(콘티넨탈과 경남제약)의 교섭대표노조는 금속노조에 대하여 상고했다.

대상판결의 원심은 콘티넨탈 기업노조가 2014년 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주요 근로조건에 관해 사용자와 심의·결정·합의할 권한을 교섭대표노조에게만 부여하고 소수노조의 참여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내용의 차별적인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은 실체적 공정대표의무 위반에 해당하고, 그러한 내용에 관해 소수노조에게 단순히 해당 조문만을 전달했을 뿐 규정 취지와 교섭과정을 설명하지 않고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은 절차적 공정대표의무 위반이라고 봤다. 원심은 또한 경남제약 기업노조가 소수노조의 교섭과정에 대한 정보제공 및 잠정합의안 내용 설명 요구에도 잠정합의안 내용과 찬반투표 시행 사실 등을 알리지 않고 단체협약을 체결한 것이 절차적 공정대표의무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한편 원심은 4개 사업장 교섭대표노조가 잠정합의안에 관한 총회 또는 대의원대회의 결의 절차를 거치기로 했다면 소수노조 조합원에게도 동등하게 절차에 참여할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하면서 공정대표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다만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도입 후 확립된 기준이 없다는 이유 등을 들어 고의 또는 과실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불법행위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2. 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쌍방 상고를 모두 기각했다. 다만 대상판결은 다음과 같이 절차적 공정대표의무 위반 판단기준을 제시한 뒤 교섭대표노조가 잠정합의안 찬반투표를 실시하면서 소수노조 조합원들을 배제한 것을 공정대표의무 위반으로 본 원심 판단의 잘못을 지적했다.

가. 절차적 공정대표의무의 내용

대상판결은 “공정대표의무는 헌법이 보장하는 단체교섭권의 본질적 내용이 침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기능하고, 교섭대표노동조합과 사용자가 체결한 단체협약의 효력이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다른 노동조합에도 미치는 것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고 하면서도, “절차적 공정대표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보기 위해서는 단체교섭의 전 과정을 전체적·종합적으로 고찰해 기본적이고 중요한 사항에 관한 정보제공 및 의견수렴 절차를 누락하거나 충분히 거치지 아니한 경우 등과 같이 교섭대표 노동조합이 가지는 재량권을 일탈·남용함으로써 소수노동조합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고 봤다.

나. 잠정합의안 찬반투표시 소수노조를 배제하면 공정대표의무 위반이 되는지 여부

대상판결은 잠정합의안 찬반투표에서 소수노조 조합원들을 배제했다고 해서 곧바로 공정대표의무 위반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로, 1) 교섭대표노조의 대표자는 창구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노조와 그 조합원을 대표해 독자적인 단체협약 체결권을 가지므로 소수노조와 그 조합원의 의사에 기속되지 않는 점, 2) 교섭대표노조 규약의 절차는 교섭대표노조 내부의 의사결정을 위한 절차일 뿐 법률상 요구되는 절차가 아닌 점, 3) 노조법에 쟁의행위 찬반투표 절차에 규정을 두고 있는 것과는 달리 잠정합의안에 대한 찬반투표 실시 여부나 실시 기관, 실시 방법 및 정족수 등에 관해서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점을 제시했다.

다. 교섭대표노조와 소수노조와의 관계

교섭대표노조와 소수노조는 위임관계에 있지 않고, 따라서 위임관계에 따른 의무를 다하지 않아도 된다고 봤다.

3. 판결의 의미 및 과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도입한 2011년 무렵부터 한국의 노사관계에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와 결합된 반노조적 차별행위 및 부당노동행위는 급격히 증가했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특정 시점에 한 명이라도 조합원 수가 많은 노조에게 교섭대표노조의 지위를 부여하고 배타적인 단체교섭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소수노조로부터는 단체교섭권을 박탈한다. 교섭대표노조만 단체교섭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사용자에게 어떠한 노조가 교섭대표노조가 되는지, 누가 그 교섭대표노조의 대표자가 되는지 매우 중요하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2012년 한국노총이 제기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위헌소송을 기각하면서 노조법은 교섭대표노조가 되지 못한 소수노조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자와 교섭대표노조에게 공정대표의무를 부과해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노조 또는 그 조합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등 공정대표의무가 창구단일화 제도의 위헌성을 완화하는 제도적 장치라고 보았다.

대상판결의 원심은 그러한 차원에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소수노조의 노동 3권 특히 단체교섭권을 제한하는 것임에도 분명한데도 그 헌법적 정당성을 수긍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제한을 통해 얻게 되는 법익이 있다는 점뿐만 아니라 입법자가 단체교섭권 제한에 따른 문제점을 상당 정도 제거 또는 완화할 수 있는 수단을 동시에 마련했기 때문”이라면서 노조법에서 정한 추상적인 공정대표의무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 밝힐 때는 “공정대표의무의 헌법적 의미와 비중”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교섭대표노조가 단체협약의 효력을 받는 조합원의 총의를 수렴할 때에는, 수권적 동의 또는 조합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최소한 소수노조 조합원에게도 동등하게 위와 같은 절차에 참여할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한 “교섭대표노조 또는 교섭대표노조 대표자의 독자적 운영을 막기 위해서는 소수노조 또는 소수노조 조합원에게도 실효적인 책임추궁 방법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교섭대표노조의 재량권, 교섭대표노조의 대표자가 가지는 독자적인 단체협약 체결권 등을 강조하면서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갖는 위헌성을 완화하는 제도로서 공정대표의무가 가지는 의미와 기능을 축소했다. 이러한 판단은 결국 헌법상 노동 3권 보장과 노조 운영의 핵심적 원리인 조합민주주의를 가볍게 본 인식에 바탕한 것으로 보인다.

대상판결은 “공정대표의무는 헌법이 보장하는 단체교섭권의 본질적 내용이 침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기능하고, 교섭대표노동조합과 사용자가 체결한 단체협약의 효력이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다른 노동조합에도 미치는 것을 정당화하는 근거가”된다고 했지만, 공정대표의무가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되는지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았다.

모든 노동자는 헌법상 노동 3권의 주체다. 얼마 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취소 사건에서 노동 3권을 “헌법의 규정만으로 직접 법규범으로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체적 권리”라고도 봤다(2016두32992 판결). 그런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하에서 소수노조 조합원들은 자신들이 결성하고 선택한 노조를 통해 집단적인 교섭을 하지 못한다. 자신이 선출하지도 않은 교섭대표노조의 대표자가 체결한 단체협약을 적용받아야 하고, 독자적인 단체행동을 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교섭대표노조 조합원들이 잠정합의안 찬반투표를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표명할 때 소수노조 조합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찬반투표 하러 가는 교섭대표노조 조합원들에게 찬성 내지 반대표를 던져 달라고 호소하는 방법 뿐이다. 헌법이 명문으로 보장하는 노동자 개인의 구체적 권리가 어떻게 법률과 그에 대한 해석으로 박탈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대상판결은 원심과 달리 노조의 자주성과 민주성보다는 노사관계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조합원들에 의한 민주적인 의사결정보다는 교섭대표노조 대표자의 독자적인 권한 행사를 강조했다. 그러나 원심이 판시했듯이 대법원 91누12257 전원합의체 판결(노조 대표자의 단체협약 체결권을 제한하는 규약 조항이 노조 대표자의 권한을 형해화한다고 봐 무효로 판단)은 노조 대표자의 단체협약 체결권을 인정하는 근거로 ‘노조가 하나의 사단이라는 점’과 ‘노조가 자주적으로 대표자를 선출하거나 교체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으나,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에 참여한 소수노조와의 관계에서 교섭대표노조 대표자에게는 이와 같은 이론적 근거를 인정할 수 없다.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교섭의 효율성과 안정성이라는 명목으로 노동자 개인의 헌법상 노동 3권을 박탈하고, 노조 운영원리로서의 조합민주주의를 체계적으로 약화시키는 제도다. 대상판결은 이러한 점을 확인시켜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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