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염병 위기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된 것이 지난 2월 말이니까 어느덧 9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필자와 같이 의학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이제 곧 끝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접을 만큼 코로나19 사태는 장기화하고 있다. 이처럼 질병의 뒤끝이 길어지자, 감염병 자체의 위험이 아니라 그 경제적 충격이 노동자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위협은 피라미드 구조의 가장 아래쪽에서 제일 심각하게 발현되고 있고, 그 상징적인 사례가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의 정리해고가 아닐까 생각된다. 재벌·대기업 중심의 정부지원에서 중소기업 노동자, 간접고용 노동자,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우선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역시나 코로나19였다. 코로나19로 비행편수가 줄어들자 회사는 돌아가며 연차를 사용하도록 했고, 노동자들도 1주일 동안의 무급휴직에 동의했다. 그리고 3월16일, 회사는 6개월 동안 유급휴직을 실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불과 나흘 만에 희망퇴직 공고문이 붙더니, 3월24일에는 무기한 무급휴직을 하지 않으면 정리해고 대상이 된다고 했다. 직원 470여명 중 100여명이 희망퇴직했고, 360여명이 무기한 무급휴직을 받아들였다. 무기한 무급휴직을 택한 직원 중 170여명은 회사에 ‘선발’돼 지금도 일하고 있다. 희망퇴직도, 무기한 무급휴직도 선택하지 않은 8명은 5월11일 정리해고됐다. 8명 중 2명은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남은 6명은 일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결국 회사의 제안 내용은 “업무에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은 회사가 알아서 정할 테니 일단 무급휴직에 동의해라. 무급휴직 기간은 무기한이다. 추후 경영사정이 좋아지면 복귀시키겠지만, 누구를 복귀시킬지는 회사가 알아서 결정하겠다. 복귀 대상자에는 무급휴직자뿐만 아니라 희망퇴직자도 포함되니 희망퇴직도 적극적으로 고려하시라”는 것이었다. 이처럼 일방적인 요구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은 끝내 정리해고를 당하고 아직까지 일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전환점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지난 8월10일과 18일에 각각 인천지방노동위원회와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해고노동자들이 부당한 해고를 당했다고 판정했다. 회사가 고용유지지원금도 신청하지 않는 등 최소한의 해고회피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판정이 내려진 지 3개월의 시간이 지났고, 회사는 여전히 복직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위 사례에서 보듯이, 코로나19로 인한 일자리 위기는 다단계 하청구조의 아래쪽에서 훨씬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다. 고용안정을 위해 마련된 천문학적인 기금이 일자리 위기의 진앙에서 가장 먼 곳에만 지원된다는 현실은 그래서 역설적이다. 아시아나케이오는 재하청업체이지만, 금호아시아나재단이 지분의 100%를 소유하고 있어 아시아나항공과 사실상 계열사 관계에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기간산업안정기금 등 천문학적인 지원을 받고 있음에도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이 속절없이 정리해고로 내몰린 현실은 그래서 모순적이다. 정부는 기간산업안정기금 이외에도 항공산업에 약 6천600억원의 금융지원, 약 2천185억원의 사용료 감면, 약 5천492억원의 납부유예 같은 다양한 지원을 시행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용안정을 코로나19 위기 극복의 핵심 과제로 꼽고 있으나, 위와 같은 정부 지원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일자리 지키기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현실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가난은 개념이 아니라 생활이다.” 소설가 김훈이 어느 책의 추천사에서 한 말이다. 코로나19 시기에 그 생활의 무게에 짓눌려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이, 이스타항공 노동자들이 고통받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강제 휴직 상태에 있던 항공사 승무원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기사가 올라온다. 벼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생존 문제를 더 이상 방관하지 않기를, 취약계층에게 위험이 집중되는 현실을 개선하고 대책을 마련할 것을 정부에 강력히 촉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