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 서울행정법원 2019. 5. 30. 선고 2018구합81769 판결
1. 사안의 개요
이 사건 사용자는 공항철도 주식회사이고, 이 사건 근로자는 위 회사의 기관사다.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에 따르면 근로자가 연차유급휴가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근태계에 휴가사유를 기재하고 필요한 경우 증빙서류를 첨부해 문서 또는 전화를 통해 사용희망일이 속한 달의 전달 10일부터 사용희망일 2일 전 사이에 신청·승인받아야 한다.
근로자는 예정된 일본 여행(근로자가 속한 공항철도노동조합과 일본 철도노동조합 사이의 직종교류)을 위해 2017년 9월10일에 2017년 10월13~14일 이틀에 대해 연차유급휴가를 신청했다가, 입국일인 10월14일에는 출근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돼 이를 취소했다. 이후 입국 직후 촉박하게 출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판단하에 다시 14일에도 연차유급휴가를 신청했다. 이러한 근로자의 10월14일 연차유급휴가에 대한 신청 및 재신청 행위는 모두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이 정한 절차를 좇아 신청기간 내에 이뤄졌다. 그런데 근로자는 일본 체류 중 관리자로부터 10월14일 연차유급휴가신청이 미승인됐다는 통보를 받았고 이에 노조간부를 통해 승인을 재신청했는데, 관리자는 다시 ‘대체근로자가 없어 승인이 불가하다. 다만 대체근로자를 확인해 보겠으니 10월14일에 일단 출근하라’고 답했다. 이후 노조간부의 지속적인 요청에도 관리자는 ‘연차유급휴가를 사용하려면 대체근무자를 직접 구해 와야 한다’고 해, 대체근로자가 확보되지 않는 이상 연차유급휴가 승인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10월14일 오전 최종적으로 연차유급휴가가 미승인됐다는 문자메시지를 근로자에게 전송했다.
근로자는 10월14일에 출근하지 않았고, 사용자는 승무운용원(비상상황에 대기하기 위해 24시간 근무하는 인력)을 대신 투입해 열차를 운영했다.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해 무단결근 및 출근지시 불응을 징계사유로 경고처분의 징계조치를 했고, 근로자는 인천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경고구제신청을 제기했다.
2. 노동위원회 판정 경과
인천지방노동위는 ‘근로자의 무단결근 사실이 존재하므로 경고처분의 사유는 인정되나, 근로자의 귀책사유에 비해 양정이 과도하므로 부당하다’는 취지로 판단해 구제신청을 인용했다. 반면 중앙노동위는 ‘경고처분의 사유 자체가 존재하지 아니하여 부당하다’는 취지로 판정했고, 사용자는 위 판정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3. 대상판결의 요지
사용자는 근로자가 신청한 10월14일에 연차유급휴가를 부여하게 되면 사업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발생하므로 이를 부여하지 못했던 것이고, 사용자가 적법하게 시기변경권을 행사했는데도 근로자가 출근하지 않았으므로 무단결근이며, 따라서 징계사유가 인정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다음과 같은 근거로 사용자의 주장을 배척하면서, 시기변경권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으므로 근로자의 연차유급휴가 사용은 무단결근이 아니고, 따라서 징계사유가 부존재한다고 봤다.
(1) 연차유급휴가 사용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권리로서 통상 예견되는 일이므로 사용자는 필요한 대체근로자를 충분히 확보해 뒀어야 했다. 특히 공항철도처럼 근로자가 항상 같은 요일과 시간대에 근무하지 않는 교번제(승무원근무표에 따른 교번별로 기관사를 배치해 운행토록 하는 방식) 사업장의 경우 사용자는 근로자의 연차유급휴가 사용권 보장을 위해 대체근로자 확보에 더욱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사용자는 교번제의 특성을 고려한 대체근로자를 충분히 확보해 두지 않았다.
(2) 근로자는 취업규칙 등이 정하는 절차를 준수해 연차유급휴가를 신청했고, 그 시기는 업무 증가가 예상되는 특별한 시기도 아니었다.
(3) 사용자로서는 근로자의 대체근로자를 확보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고, 근로자는 노조간부를 통해 사용자에게 자신의 대체근로자를 확보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사용자는 적극적으로 대체근로자 확보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채로 근로자에게 대체근로자를 구해 오라고 하거나 일단 출근하라고 요구했을 뿐이다.
(4) 사용자는 당일 투입할 수 있는 대체근로자가 있었음에도 비용(휴일근로수당) 소모를 이유로 투입하지 않았는데, 그 비용은 사측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5) 사용자는 긴급한 인력운용을 위해 승무운용원을 두고 있고 실제로 10월14일에 승무운용원을 대체 투입했다.
4. 대상판결의 의의
근로기준법상의 연차유급휴가는 일정 기간 근로제공의무를 면제해 줌으로써 휴양 기회를 제공해 근로자로 하여금 신체적 또는 정신적 건강을 회복하게 하는 동시에 근로자의 사회적·문화적 생활을 충분히 보장하기 위한 제도다.1) 근로기준법은 60조1~4항에서 연차유급휴가의 요건 및 산정방식을 규정한 뒤, 5항에서 이른바 연차유급휴가의 ‘시기지정권’과 ‘시기변경권’에 대해 정하고 있다. 이 중 ‘원칙’은 시기지정권으로, 연차유급휴가는 근로자의 권리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근로자의 청구가 있는 시기에, 청구한 만큼 줘야 한다. 시기변경권은 어디까지나 ‘예외’로서, 근로자가 지정한 시기에 연차유급휴가를 부여하는 것이 사업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만 인정될 수 있다. 이때 사업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란, 근로자가 지정한 시기에 휴가를 주는 경우 그 사업장의 업무능률이나 성과가 평상시보다 현저하게 저하돼 상당한 영업상의 불이익 등이 초래될 것으로 염려되거나 그러한 개연성이 인정되는 사정이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기업의 규모, 업무량의 증대, 사용자의 대체근로자 확보 여부, 근로자가 담당하는 업무의 성질, 다른 근로자의 시기지정과의 관계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되 입증책임은 사용자에게 있다.2)
본 사안과 같이 근로자는 정당한 연차유급휴가 사용일 뿐 무단결근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사용자는 시기지정권이 유효하게 행사됐으므로 무단결근이라고 주장하는 경우, 쟁점의 실질은 사용자에게 입증책임이 있는 시기지정권의 요건이 충족됐는지 여부로 귀결된다. 사용자는 공항철도가 (공공기관은 아니고 민간기업이나) 공항철도 운송사업이라는 사업의 공공성(철도 결행 방지 등)이 크다는 점, 대기기관사 증원 노력을 했으나 노사 이견으로 충분한 대체인력 확보가 어려웠다는 점, 당일에 투입 가능한 인력이 마땅치 않았고 사용자가 적극적으로 대체근로자를 확보할 경우 강요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점 등에 비춰 사업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였다고 주장했으나,3) 법원은 앞서 본 이유로 이를 모두 배척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연차휴가는 그 사용이 통상적으로 예견되는 근로자의 권리이므로 사용자가 충분한 대체근로자를 확보해 둘 책임이 있다는 종전 하급심 법리4)를 확인하면서도, 특히 교번제를 운용하는 궤도사업장의 경우 대체인력의 충분한 확보에 더욱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또한 대체근로자 확보에 소요되는 비용도 응당 사용자가 부담해야 할 범위라는 점을 명확히 밝혔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최근 하급심 판결들은 연차휴가 사용 권리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판결들을 다수 내리고 있다. 이를테면 법원은 버스운송업체인 사용자가 운영버스의 수 및 운행방식에 비해 근로자들의 연차유급휴가 사용을 대비한 대체인력을 충분히 확보해 두지 못했던 점, 그 대체인력 확보를 위해 인가차량의 2.35배를 초과하는 운전기사를 고용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았던 점, 휴일과 평일의 배차인력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경우 인원상의 제약하에서도 근로자들에게 평일 연차휴가를 부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에 비춰, 버스노선 결행 발생이라는 사업운영의 지장은 휴가 실시 및 그로 인한 인원 대체방법을 제대로 강구하지 못한 사용자의 잘못에 의한 것이므로, 이를 이유로 한 연차유급휴가신청 반려는 정당한 시기변경권의 행사가 아니며 근로자의 결근은 무단결근이 아니라고 봤다.5)
또한 법원은 가전제품 수리업을 수행하는 사용자가 업무증가 등을 사유로 근로자의 연차유급휴가신청을 반려한 사안에 있어서도, 단순히 근로자가 연차유급휴가를 사용함으로써 근로인력이 감소돼 다른 근로자들의 업무량이 상대적으로 많아진다는 일반적인 가능성만으로는 시기변경권이 인정될 수 없다고 판시하기도 했다.6)
이러한 최근 하급심 판결들의 흐름은 근로자의 연차유급휴가 시기지정권이 명확한 ‘원칙’이고 사용자의 시기변경권은 특수한 조건이 충족돼야만 인정 가능한 ‘예외’에 불과함을 확인하는 동시에, 입증책임의 분배에 충실하게 시기변경권의 인정 요건을 엄밀히 판단한 사례들이라 할 수 있다. 연차유급휴가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권리로서 명시돼 있으나, 현실에서는 근로자가 이를 행사하고 싶어도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근로자의 시기지정권이 아니라 사용자의 시기변경권이 마치 원칙인 것처럼 전도돼 나타나는 일이 잦고, 근로자가 권리를 주장하다가 도리어 징계를 받는 대상판결과 같은 사안도 적지 않다. 대상판결을 비롯한 최근 하급심 판결례들이 근로현장에서의 연차유급휴가 사용에 대한 근본 원칙을 재확인하고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각주>
1) 대법원 1996. 6. 11. 선고 95누6649 판결, 대법원 2008. 10. 9. 선고 2008다41666 판결
2) 서울행정법원 2016. 8. 19. 선고 2015구합73392 판결 등
3) 사용자는 취업규칙 및 단체협약상 연차유급휴가의 사용에 사용자의 ‘승인’이 필요하게 돼 있는데 근로자가 그 승인을 득하지 못했다는 점도 주장했다. 그러나 판례는 취업규칙 등에 이러한 사전 승인에 관한 규정이 존재하는 경우 이는 단지 사용자에게 유보된 연차유급휴가 시기변경권을 적절하게 행사하기 위한 규정으로, 그 범위에서만 효력이 인정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대법원 1992. 6. 23. 선고 92다7542 판결, 대법원 1997. 3. 25. 선고 96다4930 판결). 행정해석도 근로자가 특정 시기를 정해 연차유급휴가를 신청한 경우 사용자 승인 없이 이를 사용했다 하더라도 정당한 시기변경권을 행사하지 않는 한 당연히 결근 처리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근기 68207-1569, 2002. 4. 16.). 따라서 승인 여부는 별도 쟁점이 아니라 사용자의 시기변경권 요건이 충족됐는지 여부의 판단에 포섭되는 내용이다.
4) 서울행정법원 1999. 9. 17. 선고 99구8731 판결
5) 서울행정법원 2016. 8. 19. 선고 2015구합73392 판결
6) 서울고등법원 2019. 4. 4. 선고 2018누57171 판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