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선언했을 때 현장 노동자들의 기대는 매우 컸다. 공적인 업무를 담당하면서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권리와 권한을 인정받지 못했던 비정규 노동자들은 이제야말로 긍정적인 변화가 있으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정부가 정규직 전환 심의를 각 기관에 맡겨 버리면서 현장에서 원칙은 사라지고 비정규직에 대한 폄훼와 갈등이 난무하며, 정규직 전환 대상 예외가 늘어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고 있으며 기간이 만료된 비정규직들은 속절없이 해고되고 있다. 장밋빛 선언과는 달리 현장에서는 체념과 갈등이 넘쳐 난다.

대표적인 사례로 서울의료원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공공기관에 정규직 전환 전권을 맡겼을 때 비합리적인 기관에 의해 어떻게 비정규 노동자들이 희망고문을 당하다 쫓겨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서울의료원은 서울시 산하 시립종합병원이다. 약 1천400명이 일하고 있으며 비정규직은 무기계약직까지 포함해 300명 정도다. 정부와 서울시의 정규직 전환 방침에 따라야 하는 공공기관이지만 정부가 정규직 전환 정책을 발표한 이후에도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 구성은 깜깜이고, 정부 정책 발표 이후 계약만료로 해고된 노동자만 30명을 넘어선다.

한 노동자는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노숙인 일자리사업으로 서울의료원에서 일했다. 하는 일은 ‘청소업무’라고 명시돼 있었지만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했고 서울시가 임금을 50% 지원했다고 하는데도 일당 5만원밖에 받지 못했다. 3년 넘게 일하다 해고된 후 공채 계약직으로 서울의료원에 다시 들어와 이전과 동일한 업무를 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차별을 참을 수 없어 ‘차별시정’을 신청한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차별시정 판정을 받고 경영성과에 따른 기관성과금이나 각종 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됐지만 결국 해고당했다. “2년이 지나면 정규직화해 준다”는 약속은 말뿐이었고, 심지어 2년 넘게 일을 시키고 해고했지만, 서울의료원은 계약서상 오류일 뿐이라며 해고를 정당화했다.

또 다른 노동자도 차별시정을 신청해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큰 고통을 당했다. 서울의료원은 사측 편을 드는 노조위원장 진술서를 받아 제출했는데, 차별시정을 신청한 노동자가 “공급실 내 심부름 등 보조적인 업무를 주로 했고 공급실 타 직원과 비교해 볼 때 온전히 업무를 수행하지 못했다”고 표현돼 있다. 노숙인 지원사업 기간 동안 일을 잘해서 공급실 파트장 요청으로 새롭게 입사해 일했던 노동자를 대상으로 말이다. 정규직노조 위원장이 비정규 노동자의 차별시정을 가로막으려고, 노동자를 폄훼하고 헐뜯는 이유는 서울의료원의 조직문화가 그만큼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의료원은 지난해 6월 의료기관 인증평가 기간에 인력이 부족하자, 청소노동자를 신규채용하고 합격통지서를 보냈다. 그런데 그해 7월 청소노동자들이 무기계약직 전환을 앞두고 있었으므로 그 노동자들을 발령 내지 않고 버티다가 무기계약 전환이 끝난 7월15일에야 발령을 냈다. 그리고 이후 재채용 과정에서 탈락시켜 버렸다. 또 환자이송을 담당할 노동자들이 부족한 상태인데도 신규채용은 하지 않고 기간만료라는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고 있다. 심지어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장애인고용법)에 의거해 채용한 주차관리 장애인도 2년 계약이 되기 직전에 해고하고 새로운 장애인을 공개채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서울시 책임도 크다. ‘노숙인 일자리’를 ‘청소업무’에 배치했다는 서울의료원의 서류만 믿고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정부 일자리 정책으로 일한 노동자들의 업무 실태도 모르고 ‘일자리 정책으로 채용된 비정규직은 정규직 전환 예외’라고 선언하고 있으니, 그동안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수년간 해 온 노동자들은 기가 찰 뿐이다. 그리고 서울시는 ‘정규직화 지침’을 내려놓고도 산하기관이 정규직 대상자를 해고하는 것에 침묵했다. 서울시와 정부는 이제부터라도 비정규직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고 ‘상시업무 정규직화’와 ‘정규직 전환 대상 해고금지’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비정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최우선 반영해야 한다’는 원칙도 세워야 한다.

서울의료원은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를 즉각 구성하고 비정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비정규직에 대한 해고를 중단하고, 공채라는 형식을 빌려 임의로 노동자를 선별채용하는 행태를 당장 멈춰야 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각 기관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 노동자들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을 서울의료원이 명확하게 보여 준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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