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나쁜 정부는 나쁜 정책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좋은 정책으로 포장하는 기술을 발전시킨다. 나쁜 정책이 좋은 정책으로 둔갑하고 많은 시민들이 그 거짓 포장에 현혹돼 그 정책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지금의 노동시장 구조개악이 딱 그런 모양새다. 일반해고 요건 완화, 직무성과급제 도입, 기간제한 연장과 파견대상 확대 등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정책에 대해 ‘청년일자리 창출을 위한’이라거나 ‘중장년 일자리 창출’이라거나 혹은 ‘비정규직 보호’라는 그럴듯한 포장을 하면서 이 법안의 진실을 감춘다.

법안의 진실은 단순한 것이다. 정리해고와 징계해고에 이어 기업이 자유롭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며, 기업이 임금도 개별 노동자들에 대해 임의로 책정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고, 비정규직 채용에 대한 규제를 없애 비정규직을 자유롭게 쓰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기업 마음대로’ 고용과 해고와 노동조건과 임금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니, 기업에게 일방적인 권한을 주는 정책인 셈이다. 그래서 노동계에서는 이 법안을 ‘기업 청부입법’이라고도 부른다. 실제로도 전경련과 대한상공회의소·경총은 이 법안을 꾸준히 정부에 건의하고 제안했다.

제대로 거짓말을 하는 방법은 바로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했던가. 급기야 이 나라 대통령은 스스로의 거짓말을 진실로 확신하는 지경에 도달한 것 같다. 대통령은 법안 처리를 촉구하며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이 제대로 될 수 있을지 잠이 안 온다”고 말하기도 하고, 심지어 “노동개혁을 해결하지 못하면 젊은이들이 가슴에 사랑이 없어지고 삶에 쫓겨 가는 일상이 반복될 것”이라는 말도 남겼다. 이 법안이 젊은이들을 위한 법안이라고 스스로 믿지 않는 다음에야 결코 나올 수 없는 어록이다.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자유롭게 해고하는 법을 만들면서 이 법이 있어야 청년일자리 창출이 되고 청년들이 사랑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다니 이쯤 되면 가히 놀라운 자기 최면 아닌가.

적어도 정부는 솔직해야 한다. “이 나라 경제가 어려운데 기업들이 잘돼야 하니, 노동자들이 양보해서 가난해도 참고 견뎌라” 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그때부터는 제대로 된 논쟁이 시작될 수 있다. 정말로 기업이 잘되는 게 경제를 살리는 길인지, 노동자들이 양보하면 이후에 대안이 생기는 것인지 말이다. 그런데 정부의 거짓말로 인해 정부 정책의 거시적인 방향이나 대안에 대해 논쟁하지 못한 채, 진실게임이나 하고 있어야 하니 얼마나 소모적이고 비합리적인가.

정부의 이런 모습은 이 정부가 ‘보수적인 정부’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적어도 보수라면 자신의 가치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정부는 보수적이든 아니든 ‘가치’ 일반에 대한 인식이 없어 보인다. 기업과 결탁해 단기적인 효과만 노리며, 집권 카르텔을 형성한 이들은 눈앞의 이익만 추구하고,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데에만 능하다.

그래서 보수적 가치를 솔직하게 내세우기보다는 노동자들이 해결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문제들을 그대로 가져와서 자신들의 방식으로 포장해서 내놓기만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정부는 악질적이기도 하다.

정부의 이런 태도가 용인되고 수용되는 것은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다. 언론이 노동개악의 문제를 제대로 알리기보다는 정부의 보도자료를 베껴 쓰며 때로는 앞장서서 선동적인 문구로 정부의 포장을 선전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비판 기능을 잃은 언론은 그래서 사회에 해악이다. 그리고 소위 ‘전문가’들의 비겁도 한몫한다. 경찰이 봉쇄해 안전하게 들어가 앉은 ‘전문가 공청회’ 자리에서 왜곡되고 편향된 설문조사와, 한쪽면만 담은 외국사례와, 현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사례들을 들고 와서 정부 정책을 편드는 이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말 한마디가 전체 노동자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현실감 결여가 이들의 큰 죄다.

노동개악을 추진하는 정부에 촉구한다. 솔직하게 말하라. “우리는 기업을 살리기 위해 노동자들을 희생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말하라. 그 희생을 노동자들에게 요구하려거든 당신들이 생각하는 경제회생의 전망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라. 노동자들이 희생을 하면 어떻게 해서 그 삶이 다시 돌아올 수 있게 할 것인지를 말하라. 그런 전망도 없이, 그런 생각도 없이 오로지 그럴듯한 말로 노동자들을 속여서 희생을 강제할 경우 그 현실을 깨닫게 된 노동자들의 분노와 절망을 당신들은 어떻게 감당하려 하는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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