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번이라도 1인 시위를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단 몇 시간이라도 피켓을 들고 혼자 서 있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를. 특히 그것이 오랜 시간 몸담고 있던 곳에서 쫓겨난 억울함을 알리기 위한 경우라면, 얼마 전까지 한솥밥을 먹던 사람들이 자신을 무심히 스쳐 지나갈 때 얼마나 참담한 마음이 드는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남은 방법은 그것밖에 없을 때의 그 절박함을.
서대문역 근처 농협중앙회 건물 앞에서 5년째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전국사무연대노조 농협중앙회지부 배삼영 지부장은 25년 동안 농협중앙회에서 일하면서 세 차례 해고당했다. 정규직 운전기사로 일하다가 1999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퇴직을 강요당한 후 비정규직으로 다시 고용됐다. 2001년 농협중앙회 내 비정규직을 조직대상으로 하는 농협중앙회민주노조가 설립된 후 2004년 4월 위원장으로 선출된 배삼영 지부장은 2008년 2월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다시 해고된다. 끈질긴 투쟁 끝에 복직한 배 지부장은 2010년 7월 다시 해고됐다.
정규직이었을 때는 강요된 희망퇴직으로, 비정규직이 된 후에는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일터에서 쫓겨났지만 그것은 분명 ‘해고’였다. 농협중앙회는 기간제법 시행 즈음인 2007년 7월 7천여명의 기간제 노동자 중 600여명만을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자로 선정했고, 당시 배 지부장은 무기계약직 전환 대상자에 포함돼 있었지만, 전환 대상자를 전체 비정규직으로 확대할 것을 주장하며 자신의 무기계약직 전환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후 ‘기간제법에 따라’ 2년의 기간 만료를 이유로 반복적으로 해고당한 것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법원은 근로계약서에 기간이 2년으로 돼 있다는 형식적 면만을 중시해 배 지부장의 해고를 ‘해고’로 인정하지 않았다. 900만명에 달하는 우리 사회 비정규 노동자들이 마찬가지 이유로 일터에서 쫓겨나고도 해고로 인정받지 못한다. 농협중앙회와 법원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사측은 배 지부장의 1인 시위를 막기 위해 시위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그들의 주장은 “부당해고 철폐”, “농협중앙회 발전에 밑거름이 됐던 비정규 노동자들은 이제 희망 없이 살고 있음”, “해고는 살인이다” 등의 문구를 적은 피켓을 몸에 부착하거나 연설로 말하거나 구호로 제청하는 행위를 금지해 달라는 것이었고, 올해 8월 서울중앙지법은 배 지부장이나 다른 사람이 이러한 행위를 하면 위반일수 1일당 70만원씩 사측에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배 지부장의 해고가 대법원에서 ‘계약기간 만료로 인한 근로관계의 종료’로 확정됐으니, 이를 ‘부당해고’라고 주장하는 것은 농협중앙회의 명예와 신용을 훼손한다는 취지다.
요컨대 법에 의해 2년마다 잘리는 비정규직은 이를 ‘해고’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지금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쉬운 해고 제도는 업무부진을 이유로 근로관계를 종료시킬 수 있는 권한을 사용자에게 주겠다는 것이니, 이렇게 잘린 사람들도 자신의 무능을 탓해야지 이를 ‘부당해고’라고 불러서는 안 될 것이다. 정리해고를 당한 사람들은 현행법에 따른 경영상 해고가 이뤄졌으니 역시 ‘부당해고’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지금 “평생 비정규직”과 “사용자 맘대로 해고”를 밀어붙이고 있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바로 2009년 기간제법의 기간제한 때문에 100만명이 넘는 비정규직이 해고당할 것이라는 ‘100만 해고대란설’을 들먹이며 법 개악을 추진했던 인물이다. 상시적 업무에 비정규직을 사용하면서도 일회용품처럼 쓰고 버리는 기업과 법령에 의한 해고를 ‘부당한 해고’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면, 차라리 우리 노동법에서 해고로부터의 보호 제도를 없애자고 말하는 것이 정직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지금 정부와 법원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