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다음달 안에 노동개혁 입법안을 제출하겠다고 연일 공언하고 있다. 한국노총이 노사정 대화에 복귀하더라도 짧은 시간 안에 논의를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다. 노동개혁이 노동시장 차별과 격차해소라는 본래 취지를 벗어나 선거용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12월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원칙과 방향' 기본합의문을 채택할 때도 '2015년 3월 말'로 명시된 합의시한이 논란이 됐고, 끝내 노사정 합의 불발로 이어졌다. 박근혜 정부가 또다시 노사정 합의시한을 못 막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보름간 대화하고 합의하겠다고?

이인제 새누리당 노동시장선진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은 1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청년단체와 간담회를 갖고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재개돼 마지막 마무리 합의가 빠른 시간 안에 이뤄지면 합의정신을 바탕으로 새누리당에서 5개 개혁법안을 8월 말이나 9월 초에 제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야당도 대안을 제출하면 9∼11월 여야가 심도 있게 토론하고 대타협을 통해 마무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노총이 다음주에 노사정위에 복귀한다고 가정하면 불과 열흘에서 보름 정도 대화한 뒤 합의안을 도출해야 한다는 얘기다.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은 입법안을 제출해 올해 정기국회에서 모든 것을 끝내겠다는 것이 이 위원장의 속내다.

정부와 여당이 짧은 기간임에도 노사정 합의를 장담하는 이유는 지난 4월 결렬된 노사정위 노동시장구조개선특위 협상에서 비정규직법 개정과 일반해고 요건 가이드라인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노사정 간 의견접근이 이뤄졌거나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법·일반해고 정부 의도대로 가나

정부가 추진하는 5대 입법은 △근로기준법(통상임금·근로시간)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비정규직)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비정규직) △고용보험법(실업급여 보장성 강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출퇴근재해 인정, 감정노동자 보호) 개정안이다.

고용노동부와 노사정위는 비정규직 관련법이나 노동시간단축 관련 일부 근기법 개정안을 제외하고는 의견접근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법 개정 사안은 노사정이 합의하지 못하더라도 국회에서 입법전쟁을 벌여야 한다. 노사정이 짧은 대화기간에 합의를 서두를 이유가 없는 셈이다.

비정규직법과 관련해 노사정위가 4월에 밝힌 의견접근안에 따르면 노사정은 공동실태조사와 전문가 의견수렴을 거쳐 올해 8월 말까지 대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노사정 협상 결렬 뒤 후속조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9월 초까지 노사정 이견을 좁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이 비정규직 관련법에 대해 합의를 시도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 일부라도 의견접근을 이뤄야 입법작업이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때마침 노동부는 이달 6일 ‘비정규직 관련 입법방향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전문가 토론회를 "전문가 의견을 수렴했다"는 명분으로 삼을 수 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기간제 사용기간을 연장할 때 개별노동자 동의를 조건으로 한다는 당초 정부안과는 달리 근로자대표의 동의를 얻도록 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왔다. 협상이 재개되면 정부가 이 안을 수정안으로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부 관계자는 “노사정 대화가 재개되면 비정규직 제도개선 일정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여당의 최근 분위기를 보면 논의가 형식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발표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진 취업규칙 지침과는 달리 일반해고 요건 가이드라인의 경우 정부 쪽에서 별다른 입장 변화가 감지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새누리당이나 정부 입장을 보면 노사정 대화가 재개돼 가이드라인 발표가 일정 정도 늦어진다 하더라도 연내에는 공개할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노사정 대화가 시작되더라도 노동시장 내부 격차해소에 관한 충분한 논의 없이 정부가 주요하게 제기한 일부 의제에 관한 법안만 국회에 제출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 해소와 고령화 저출산 문제 등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당초 목표에서 멀어지고 있다”며 “노사정 합의에 성공하면 내년 총선에 이용하고, 실패하면 노동계에 책임을 돌리겠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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