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이렇게 눈물이 많이 흐를 줄은 몰랐다. 세월호가 잠겨 가는 모습을 보며, 승객들이 하나둘씩 주검으로 올라오는 모습을 보며 그냥 흐르던 눈물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눈물은 분노가 됐다. 세월호 참사 1년이 넘은 지금도 이 분노는 가라앉지 않는다. 애타게 외치는 이들을 왜 해경은 외면했는지, 왜 조타실에 들어가고서도 나오라는 방송을 하지 않았는지, 왜 선장을 재운 해경집의 CCTV는 꺼졌는지, 왜 항적도가 유실됐는지, 진실을 알려 달라는 이들에게 왜 경찰은 최루액이 담긴 물대포를 쐈는지, 죽음의 원인을 알려 달라며 애원하는 유가족들에게 왜 돈을 흔들며 조롱했는지, 왜 ‘쓰레기 시행령’을 만들어서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방해하는지, 심지어 잘못된 관리로 세월호 침몰사고의 원인을 제공해 재판을 받는 이들이 선박안전기술공단에 특채가 됐는지, 이 모든 일에 대해 분노했다.

‘분노’한다는 것은 올바르지 않음을 느꼈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난 1년간 경험한 이 모든 일들은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따스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 사회에서 이런 일들이 너무나 쉽게 합리화됐다. 경찰도, 언론도, 법원도, 그리고 정부도 모두 공권력의 이름을 빌려 이런 일들을 합리화하고, 문제를 제기하거나 분노하는 이들을 처벌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여론의 이름으로 합리화되고, 유가족들에 대한 혐오발언이 넘치는데도 다수가 침묵했다. 유가족과 함께하는 이들은 종북, 때로는 폭력세력으로 매도당했다. 진정으로 추모하고 애도했던 이들은 그래서 가슴에 멍이 들고 상처를 입었다. 사회에 대한 희망을 잃고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많은 이들은 이런 현실을 표현하는 명징한 언어를 찾고자 했다. 왜 이토록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죽음 앞에 이 사회가 이토록 잔인한지 말이다. 그것이 바로 ‘생명보다 돈’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회에 대한 인식이었다. 언제라도 사고가 날 수 있는 불법개조와 과적을 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종북의 망령을 아무 곳에나 꺼내 드는 정부가 지금의 정부였다.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에 호감을 느끼고, "함께 살자"는 구호에는 "뭘 모르는 소리"라고 쉽게 답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었다. 우리는 돈 때문에 정말로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생명의 존엄과 안전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세상을 바꾸려는 움직임,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은 새로운 ‘권리’의 바탕 위에 세워지는 것이어야 한다. 법과 언론과 제도와 정부가 새로운 사회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비웃고 가로막을 때,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힘은 법과 제도와 권력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세월호 참사를 ‘인권이 침해된 사건’으로 규정하고, 그 인권을 다시 세우기 위한 지난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가 됐다. 당연히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혀야 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하지만, 그 진실은 한 사건의 진실을 뛰어넘어 우리 사회 전반을 변화시키는 힘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4·16연대는 ‘4·16 생명의 존엄과 안전을 위한 인권선언’ 운동을 시작한다. 7월11일 수운회관에 모여 첫 번째 토론을 하고, 그 이후 전국 여러 시민들과 함께 각지에서 ‘우리가 침해당한 권리’는 무엇이며, ‘우리가 누려야 할 권리’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 권리를 누리기 위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토론할 것이다.

그 자리를 통해 모든 생명은 존엄하며 돈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할 것이다. 모든 시민과 노동자는 안전할 권리가 있고, 위험에 대해 알 권리가 있으며, 위험에 처했을 때 구조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할 것이다. 진실을 알 권리가 있고, 말하고 모이고 행동할 권리가 있으며, 혐오에 노출되지 않을 권리가 있고, 연대할 권리가 있음을 말할 것이다.

그래야 돈에 떠밀려 죽음의 위협에 놓이는 일을 멈출 수 있다.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모욕을 가하는 사회적인 악행도 중단시킬 수 있다. 사람의 생명을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기고, 시민들의 참여와 알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도 만들 수 있다. 감정의 공유와 연대로 서로가 풍성해지고,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안전할 권리에서 차별받지 않을 수 있다. 우리 스스로가 인권을 선언하고 그 가치 위에서 삶과 사회를 새롭게 세우고자 할 때, 인권을 침해하는 모든 것에 저항해 싸우기 시작할 때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4·16생명의 존엄과 안전을 위한 인권선언 운동’에 함께하자.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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