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는 삼성서울병원에서 환자 이송업무를 한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환자의 확진을 이유로 비정규직 전원을 조사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계급갈등을 선동하는 후진적인 정치의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메르스는 정규직들만 걸리는 병이 아닌 이상 삼성서울병원에서 환자 접촉 가능성이 높은 비정규직을 조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도 ‘비정규 노동자들에 대한 조사’를 ‘계급갈등 조장’이라고 보는 것이다. 아마도 이로 인해 비정규직들이 얼마나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 그리고 공공보건의료를 책임져야 할 병원이 얼마나 많은 비정규직을 채용하고 있는지 밝혀지면 의료민영화와 비정규직 확산이 문제라는 점이 확인될까 봐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말로 놀라운 ‘계급적 직관’이다.
메르스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올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서울아산병원에서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은 청원경찰은 근무 당시에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사설구급차 운전노동자, 그리고 동승요원이었던 이들도 환자이송 도중 감염됐다. 이들은 제대로 된 보호장구를 갖추지 못했다. 삼성서울병원 안전요원과 메르스 환자가 있던 병실의 간병노동자, 삼성서울병원에서 환자이송 업무를 한 노동자 모두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관리대상도 되지 않았다. 감염 정보도 제대로 제공되지 않았고, 설령 감염이 돼도 보고할 곳이 불분명했고, 후속조치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이들을 관리대상에서 제외한 삼성서울병원 등에 대해 비판했다. 그런데 ‘관리’는 단지 이들이 다른 이들을 감염시킬 우려에서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노동자들 역시 한 사람의 시민이기 때문에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감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관리대상’이 돼야 하는 것이다. 국·공립병원들은 비용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양산했고, 각종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박탈했다. 그래서 관리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비정규 노동자들은 보호장비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채 유령취급을 당했다.
이것은 단지 메르스 사태에서만 나타난 사건은 아니다. “후천성 면역결핍증 환자가 있어서 조심한다고 했는데, 따끔거려서 보니 주삿바늘에 찔렸어요. 하늘이 노래지고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노조에 얘기했더니 응급실에 데려가는데 ‘아, 이제 난 끝났구나’라는 생각에 눈물만 났어요. 여기저기 치료를 받으러 갔더니 직원이 아니라고 오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아침에 걸레질을 하다가 침대 밑을 보니 주삿바늘이 있더라고요. 그걸 꺼내려고 쳤는데, 이게 굴러가서 휴지 뭉치 앞에 섰어요. 그런데 그 휴지 사이에도 바늘이 있는지 몰랐어요. 바늘에 찔렸는데 눈앞이 캄캄하더라고요. 너무 무서운데 치료를 받고 다시 청소를 해야 했어요. 내 정신이 아닌데 울면서 걸레질을 했어요.”
서울대병원 간병노동자와 청소노동자 이야기다. 병원에서 일하기 때문에 온갖 감염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데, 감염됐을 때에는 그 병원의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다. 2013년 노동환경연구소가 연구한 '청소·간병노동자의 병원감염 실태와 개선방안'에 의하면 간병노동자의 15%, 청소노동자의 14.3%가 환자로 인해 감염됐다고 한다. 결핵·독감·감염 등이 비일비재하고 사고도 많지만 그 경우 96.1%의 노동자가 치료비용을 자기 돈으로 지불했다고 한다. 이 노동자들에게 보호구는 28.7%만 지급됐고, 안전보건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예방접종도 9.7%만 했을 뿐이었다.
병원이 비용절감을 외치면서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노동자들에 대한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았기 때문에 비정규 노동자들은 위험에 처했고, 안전 사각지대에 놓였다. 그런데 비극은 비정규 노동자들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유령취급을 받던 노동자들은 전염병이 확산될 때에는 속수무책이었고, 이것이 다시 사회적인 전염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병원의 비용절감은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무너뜨리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더 많은 비용을 사회로 떠넘기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가 공공성을 지키려면, 공공적인 업무를 떠받치는 노동자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노동자들을 존중해야 한다. 노동자를 비용으로 취급하면서 위험에 내버려 두면 그것은 반드시 사회의 비용으로, 그리고 공공성 훼손으로 돌아온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메르스 참사를 겪으면서 우리가 얻게 된 소중한 교훈은 바로 ‘돈보다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고, 그럴 때 사회도 존속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하기에 이번 메르스 사태를 통해 병원의 비정규직 문제를 온전하게 드러내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