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상신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

바야흐로 임금교섭 시기다. 자동차업종 노사가 6월 초에 상견례 일정을 잡았다. 임금교섭 링에 오르는 것이다. 한국지엠은 이미 2라운드까지 뛰었다.

올해 임금교섭은 때 이른 폭염만큼이나 초반부터 뜨거운 난타전이 예상된다. 게다가 금속노조 사업장은 선거가 있는 해다. 선거라는 변수는 이해 당사자의 정치공학적 판단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노조 말고도 차기 대권을 노리는 선수까지 링에 끼어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 임금교섭을 관전하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완성차 중에서는 당연히 현대자동차에 흥행거리가 많다. 통상임금과 임금체계 개편, 그리고 '8시간+8시간' 주간연속 2교대 시행이라는 메이저급 현안이 즐비하다.

그런데 나는 이런 메어저급 현안보다 마이너한 요구에 더 관심이 간다. 한국지엠의 연차수당 요구안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지엠은 지난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기로 노사가 합의하면서 연차수당도 같이 다뤘다. 합의 문구가 참으로 애매한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돼 있었는데, 아마도 직접 표현하기에는 노사 모두 부담이 되는 사정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상여금을 통상급으로 인정해 주는 대신에 연월차 가산율을 조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지엠은 법에서 정하고 있는 연차일수(25일)까지는 가산율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연차수당 가산율을 통상임금의 150%에서 100%로 낮췄다. 적치된 연차일수가 25일보다 많으면 25일을 초과하는 분에 대해 150%를 인정하기로 했다. 이런 합의는 통상임금으로 발생하는 인건비 부담을 낮추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다만 지난해 합의는 애매한 문구만큼이나 불완전한 수준의 합의였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 노조가 합의 내용을 수정하자는 요구안을 내놓았다. 연차수당 전체를 150%로 인정해 달라는 내용이다. 조합원 입장에서는 당연한 요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노조는 이 문제를 단순히 임금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 연차수당은 노동시간단축이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나는 연차수당이 장시간 노동의 숨어 있는 주범이라고 본다.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쌍용자동차는 지난해 한국지엠과 달리 적치된 전체 연차일수에 가산율 150%를 그대로 적용한 채 통상임금 협상을 타결했다. 연차수당이 65% 정도 올랐다. 그러자 연차를 휴가로 소진하는 일수가 줄어들었다. 평균 연차일수가 30일이 넘고, 40일이 넘는 직원도 부지기수다. 쌍용차는 연차수당은 현금으로 지급한다. 집사람도 모르는 나만의 은밀하고 달콤한 돈이다. 연차수당으로만 1천만원 넘게 받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현대차도 예외는 아니다. 현대차 노사는 주간연속 2교대 논의가 진행되던 시기에 연차수당 가산율을 100%에서 150%로 올렸다. 노동시간을 단축하자는 협의를 하면서 오히려 장시간 노동을 조장하는 합의를 했으니, 철학이 부재한 노동운동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더 길게 노동해서 더 많이 받겠다는 발상을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짧게 일하고 상대적으로 많이 받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국내 완성차 노사에게 연차일수를 과감히 줄이는 것부터 시작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최소한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25일까지만 보상하되, 25일을 초과해 적치된 연차일수는 과감하게 휴가를 가게 하라. 불이익변경 문제에 대해서는 따져 봐야겠지만, 가산율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면 불이익변경은 아닐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임금을 주는 대신에 휴가를 가라고 하는 것이 불이익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노사 모두에게 손해되지 않는다. 문제는 노조의 리더십이다. 노조가 조합원을 설득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남는다. 한국지엠 노사가 어떤 임금교섭을 결과를 도출할지 사뭇 기대가 크다.

임금피크제는 노동자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전년과 비교해 노동시간은 똑같은데 임금만 감소한다면 누가 받아들이겠는가.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하루에 4시간만 일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우습다.

반면 연차휴가는 자연스럽게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적게 일하고 적게 받되, 휴가를 통해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효과적인 방안이다. 건강하게 사는 것이 가장 돈 버는 일임을 명심하자.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 (imksgo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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