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케이블 방송업체 씨앤앰과 티브로드의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찜통더위 속에서도 파업과 노숙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국내 케이블 방송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두 회사의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노조를 결성한 뒤 원청을 교섭의 장으로 이끌어 내 단체협약을 쟁취한 바 있다.

그러나 올해 원청인 씨앤앰과 티브로드는 협력업체 간 출혈경쟁 강요, 협력업체 폐업과 조합원에 대한 고용승계 배제 등을 통해 노조를 탄압하고 있다. 게다가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자마자 공격적 직장폐쇄를 통해 조합원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노동자들의 기세에 눌려 일시적으로 노조를 인정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한 뒤 마치 간접고용 노동자 탄압 매뉴얼에 따르는 듯 협력업체 폐업과 조합원 계약해지, 고용승계 거부, 직장폐쇄 등 원청이 주도하는 노동탄압이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원청은 협력업체나 하청업체를 사실상 노무관리 부서처럼 부린다. 노동자를 활용하면서도 노동법적 책임이나 노조의 요구를 쉽게 회피할 수 있다. 이런 점이 자본이 간접고용을 선호하는 진짜 이유일 것이다. 간접고용은 제조업 전반에서부터 서비스업·건설업·운송업 그리고 공공부문에 이르기까지 전 산업에서 확산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세계적으로도 나타나는데, 런던 주식시장에 상장된 최대기업이 G4S라는 글로벌 경비용역업체라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노조와 노동법을 피하는 기업의 가치사슬(Value chain)이 지구적으로 확대되면서, 이에 대응하는 노조의 투쟁도 확장되고 있다. 세계 최대 해운업체 중 하나인 머스크(Maersk)는 세계 각지의 항구에서 하청업체를 활용하고 있다. 인도 뭄바이에서는 36시간 교대제라는 살인적 노동시간과 하청업체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 폭력깡패까지 동원한 어용노조 가입 강요에 맞서 3년여에 걸친 투쟁 끝에 2010년 자주적 노조(TDWU)가 단체협약을 쟁취하기도 했다.

2010년 터키에서는 세계 최대 택배회사 중 하나인 유피에스(UPS)의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극심한 저임금에 맞서 노조에 가입하자 조합원 163명에 대한 집단적 계약해지가 자행됐다. 노동탄압에 맞서 이스탄불에서 시작된 피케팅은 미국·유럽·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의 유피에스 가치사슬을 따라 확산됐다. 8개월여의 투쟁 끝에 2011년 유피에스와 터키의 자주적 노조(TUMTIS)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이런 투쟁 사례의 공통점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과는 교섭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버티면서도 하청업체를 통해 노동자들에게 온갖 탄압을 일삼던 글로벌 기업들에 대항해 가장 낮은 곳의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전 세계에 펼쳐진 가치사슬 속에서 일하는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이 연대해 승리를 쟁취했다는 것이다.

국제운수노련(ITF)과 같은 국제산별조직도 이러한 국제적 연대를 조직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원청-하청’이라는 기업의 형식적 경계를 넘어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노조결성 권리를 지켜 내야 한다는 인식이 새로운 국제 기준으로 형성돼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업의 경계를 넘어 노동을 활용하는 자본에 대해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이 기업의 형식적 경계를 넘어서는 것, 그것은 씨앤앰·티브로드·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투쟁이 21세기 한국 사회에 던진 과제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