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
센터 소장

이달 18일 불금(불타는 금요일)에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후원주점을 한다. 3년 만에 다시 하는 ‘술 영업’이다.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노동단체 생존권 투쟁이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꿈꾸며 1천만 비정규 노동자의 권익과 노동기본권 신장을 위해 달려온 14년을 새삼 돌아본다. 이룬 성과도 있고 보람도 컸지만 살림은 여전히 빠듯하다. 최저임금을 갓 웃도는 저임금마저도 제때 지급하지 못해 애태워야 하는 일이 일상이다. 비정규직 운동 전선에서 싸우다 죽고 해고당하고 다치고 갖은 상처와 아픔을 안고 사라져 간 수많은 동지들을 떠올리면 한가한 푸념이나 투정일 수 있겠다.

하지만 노동단체를 책임지고 있는 나로서는 어깨가 늘 짓눌린다. 지금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는 티브로드와 씨앤앰 노동자 노숙투쟁 농성장에서 신선한 활력을 얻었다가도 센터 살림 생각만 하면 한숨이 나온다. 내가 무능하고 나약한 것인가 자문해 본다. 가끔은 현장투쟁 연대하듯이 센터 재정 마련 활동에 전력투구한다면 상황이 반전될 수 있을까 고민도 해 본다.

이랜드에서 해고되고 센터 반상근 부소장으로 온 게 2009년 2월이니 벌써 6년차다. 너무 오래 한자리에 머무르는 게 아닌가 싶지만 사람과 일이 좋아 여기까지 왔다. 한데 비정규 노동자와 관련한 갖가지 사업과 투쟁 지원과 연대로 바쁘게 발품을 팔았지만 정작 자신의 발밑은 잘 돌아보지 못해 늘 곤궁했다. 상근 활동가들의 급여와 여러 복지가 열악하다 보니 미안한 마음에 일을 채근하기도 어려웠다. 노동운동과 비정규직 운동을 하는 활동가의 덕목이려니 치부하기도 했다. 처지가 비슷해야 교감할 수 있고 노동인권 감수성도 퇴색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 그런 장점은 있었다. 하지만 새롭게 변화하는 조건 속에서 젊은 활동가를 영입하려 할 때 이 모든 기존 활동가의 덕목은 악재가 되기 십상이다. 노동운동과 진보정치가 침체에 빠진 현실 조건에선 극복하기 힘겨운 딜레마다. 그래도 대다수 미조직 취약계층 노동자를 중심에 둔 대안 모색이 중요하고 비정규직 운동이 유력한 활로라 굳게 믿고 있는 센터의 생존이 급박한 현실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막막하다.

가장 바람직하고 효과적인 방도는 후원회원 확대다. 회원수가 1만4천명을 넘어섰다는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의 얘기를 들으면 다른 세상 같다. 노동이 중요하고 특히 비정규직 문제는 노사정 이견 없이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을 얻은 대표적인 노동 의제인데도 센터의 처지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최근 후원회원이 좀 확대되긴 했지만 500여명 수준이다. 주변 노동단체나 연구소를 둘러봐도 1천명 이상 되는 곳이 없다. 오히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그나마 낫다는 얘기까지 듣는다. 참 노동운동 하기 힘겨운 세상이다. 노동단체의 궁박한 현실은 당연히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 내야 할 과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연대가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센터의 생존권이 곧 나의 생존권이니 이기적인 주장으로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자발적으로 노동인권의 사각지대를 감내하고 있는 활동가들의 처지를 함께 들여다보고 손 내밀어 도울 수 있다면 그 또한 소중한 연대가 아닐까.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단식농성을 이어 가고 있고 희망연대노조와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비롯한 비정규 노동자들의 치열한 투쟁이 전개되고 있는 와중에 후원주점을 하다 보니 경황없는 중에도 마음 한편이 무겁다. 기왕에 하는 후원행사인 만큼 많은 이들이 함께 동지애도 나누고 투쟁 결의도 채우면서 하나 되는 연대의 한마당이 됐으면 좋겠다.

힘겹게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과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이 흥겹게 한데 어울려 싸울 힘을 되찾는 자리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더불어 나누는 술잔 속에서 센터의 살림도 조금은 펴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간절하면 이뤄진다 했으니.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후원회원 가입을 원하는 분이나 단체는 센터 홈페이지(workingvoice.net)를 통해 가입하거나 사무실(02-312-7488)로 연락 주시길 바란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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