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최근 취업포털 커리어에서 구직자 41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6.7%가 "비정규직으로 취업할 생각이 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그 이유 중 가장 많은 것은 "취업이 더 급해서"였다. 한국의 청년은 많은 빚을 지고 사회에 나온다. 홀로 벌어서 자녀등록금을 댈 수 있을 만큼 소득을 올리는 노동자는 거의 없다. 대학등록금이 너무나 비싸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지만 지금의 최저임금 수준으로는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댈 수 없다. 대학교육연구소가 한국장학재단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자료에 의하면 올해 4월 학자금 대출을 받은 대학생은 148만명이다. 2005년에 비해 8배 늘었으며, 대출금액도 12조3천억원으로 24배나 증가했다. 이렇게 빚이 많으니 나쁜 일자리라도 일단 가서 학자금 대출을 갚는 게 중요해진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한국의 청년이 빚을 지면서까지 대학에 가려는 이유는 학력별 임금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올해 3월 기업 729곳의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보면 실제 대기업에 다니는 대졸 신입사원 평균 연봉은 3천89만원으로 전문대졸보다 430만원, 고졸보다 741만원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만이 아니라 중소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대졸 신입사원의 평균 연봉은 2천886만원, 전문대졸은 2천530만원, 고졸은 2천262만원이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은 2천280만원, 전문대졸은 2천128만원, 고졸자는 1천994만원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악순환이다. 대학에 다니지 않으면 임금이 낮아지니 비싼 등록금을 내고라도 대학에 다녀야 하고, 일단 대학을 나오면 등록금 빚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 일자리라도 취직을 해야 하는 현실이니 말이다. 이렇게 보면 차라리 대학에 가지 않고 낮은 임금을 받고서라도 일찍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하지만 그렇게 단정하기 어려운 것은 학력에 따른 차별이 단지 연봉 차이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승진이나 승급, 구조조정시 우선 해고대상 등 미래 비전과 관련한 문제에서 학력이 낮으면 불합리한 대우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생계나 빚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으로 취업하게 되면 정규직으로 취업할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또다시 생계 압박이 심해진다. 라채린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연구원이 최근 한국복지패널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에코세대의 취업변화와 우울’ 보고서에 따르면 비정규직으로 취업을 하게 될 경우 우울감이 정규직보다 4.31배나 높다. 급하게 취업한 이들 중 25%가 넘는 이들이 1년 내에 회사를 그만둔다. 임금이나 노동환경에 대한 불만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신입사원 채용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장 큰 퇴직요인은 조직 및 직무적응 실패다. 고용형태와 무관하게 빨리 취업할 수밖에 없어서 들어간 회사에 잘 적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렇게 회사를 그만둔 노동자들이 다시 정규직으로 취업할 확률은 50%도 되지 않는다.
기업은 정규직이 돼 높은 임금을 받으려면 "능력을 키우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말은 회사에 들어와서 능력을 보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것이 학력이든 다른 스펙이든 자신의 능력을 다 갖춰서 회사에 들어오라는 의미다. 능력을 높이는 비용을 회사가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개인이 지불하게 만드는 것이다.
회사에서 일할 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은 노동자 개인이 할 일이 아니라 회사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기업은 그것을 노동자 개인의 의무로 만들고, 노동자 사이에 위계서열을 정한다. 그러다 보니 청년은 빚을 내서라도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는 기업이 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지불했던 돈을 갚기 위해 낮은 임금의 일자리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누군가는 대학등록금을 반값으로 하라고 요구하고, 누군가는 정규직 신규채용의 폭을 넓히라고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비정규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누군가는 학력차별 철폐를 외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데에는 이 모든 투쟁이 다 중요하다. 무엇 하나만으로 불안정한 청년노동자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지금의 청년세대를 가로지르는 불합리한 구조를 바꾸기 위해 청년노동자가 모이고 나서야 한다. 세대의 의제를 걸고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지금의 청년세대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은 청년 스스로가 조직하고, 세력화할 때 해결 가능성이 생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