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세월호 참사 정국 속에서 6·4 지방선거가 치러졌다. 안전이 초미의 관심사로 부각된 가운데 자본이 왕 노릇 해 온 신자유주의 세상의 병폐를 어떻게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지가 핵심적인 화두가 됐다. 참담한 희생 위에서만 천민자본주의가 양성한 왜곡된 물신주의 신앙을 되돌아볼 정도로 자본 위주로 치달아 온 한국 사회에서 이번 지방선거는 뜻하지 않은 집단적 성찰과 반성의 공론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선거만으로 세상이 바뀔 리 만무하지만 어떻든 선거를 통해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통해 과연 세월호 참사가 충격적으로 제기한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향한 흐름이 대세로 확장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무엇보다 민생의 핵심 의제인 노동 관련 사안이 지방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에게 어떻게 취급받고 있는지를 분석해 보면 만만찮은 난관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처럼 감흥이 없는 선거가 또 있을까 싶다. 당선권 여야 유력후보 가운데 노동과 인권,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를 대표공약으로 내세운 경우는 거의 없었다. 비정규직 관련 공약을 눈 씻고 찾아봐도 확인하기 어려웠다. 노동배제 정책 기조를 고수한 새누리당은 말할 것도 없고, 재작년 두 차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대책으로 공공부문의 모범적인 공익사용자로서 본보기를 보여 준 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후보조차 주요 공약에서 노동이 빠졌다.

기존 민주노동당에서 분화된 통합진보당·정의당·노동당 후보들에게서만 앞머리에 노동 관련 공약이 발견될 뿐이다. 자멸에 가깝게 사분오열돼 영향력을 거의 상실한 조직노동과 진보정당들의 무력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 가감 없이 그대로 반영된 안타까운 결과다.

2012년 양대 선거에서 경제민주화와 복지 의제가 쌍끌이 역할을 하면서 좋은 일자리가 화두가 된 걸 떠올리면 기이한 흐름이다. 아무리 지방선거지만 세월호 참사에서도 드러난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한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가 중요 의제가 됐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고 파묻혔다.

우리 일상의 도처에 위험한 시한폭탄으로 잠복해 있는 나쁜 일자리인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노동 의제를 제자리에 올려놓지 못한 채 진행되는 선거 쟁점 논란은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 주변을 겉돌기만 하는 수박 겉 핥기에 그치기 십상이다. 정곡을 관통하는 문제제기로 우리 사회의 절대 다수인 노동자들의 삶의 질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에 대해 정당한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세월호 참사의 교훈이 우리 사회의 근본 가치를 바꾸는 데까지 미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노동이 제 몫을 전혀 하지 못한 채 실종되다시피 한 이번 지방선거는 그 한계가 매우 뚜렷하다. 한국 사회의 근본적 변화가 이만큼 힘겹다는 걸 반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

자결한 삼성전자서비스 엔지니어가 경찰에 시신까지 탈취당한 채 능욕을 당했지만 삼성 자본은 아직도 파렴치하게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극심한 노조활동 탄압과 비인간적 모멸을 견디지 못하고 목을 맨 전주 신성여객 운전기사는 결국 숨을 거두고 만 현실이 아직도 한국 사회의 민낯이다. 여전히 이윤만을 좇는 거대 자본의 탐욕과 그를 비호하는 권력의 논리가 우리 사회를 작동하고 있는 엔진이 되고 있다.

답답한 질곡의 현실에서 총자본의 위압에 종속된 중앙정부가 반노동 정책으로 역주행을 가속화하고 있는 지금, 지방선거를 주목하는 것은 변방에서부터라도 한국 사회의 진정한 변화가 본격화되기를 기대하는 바람 때문이기도 하다.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거두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민의의 표상으로 불리는 선거에서 노동이 제대로 존중받아야 가능하다.

세월호 참사와 6·4 지방선거를 통해 드러난 한국 사회의 근본 문제, 특히 일상의 노동이 홀대받고 있는 묵은 숙제를 해결해야만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는 한 걸음 진전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이 실종된 6·4 지방선거를 통해 얻은 뼈아픈 교훈과 성찰이 무너진 노동운동과 진보정치를 다시 정초하는 값진 밑거름이 되기를 소망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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