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지난달 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 300명이 넘는 희생자와 실종자를 내며 최악의 재난사고가 됐다. 온 국민이 실시간 중계로 지켜보며 비탄과 울분에 잠겼다. 승객과 동료들을 버리고 가장 먼저 탈출한 선장과 선박직 선원들의 기막힌 행태에 모두 가슴을 쳤다.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한 대다수 승객을 구조할 수 있었던 골든타임에 해경과 해군, 해양수산부 등 정부기관들이 보여 준 무능하고 얼빠진 모습에 분노했다. 사태 수습은커녕 국가재난시 컨트롤타워로서의 기능조차 망각한 국무총리와 장관 등 정부 관료들의 안이하고 위선적인 대처에 할 말을 잃었다. 종국에는 모든 책임을 아래로 전가하며 무책임과 무대책의 끝장을 보여 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왜 나라가 필요한가. 국가의 책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의구심이 한반도 남단을 회오리처럼 휘감고 있다. 왜 이 지경까지 왔는가. 도처에 시한폭탄이 잠복된 위험천만한 대한민국의 항로 수정에 대한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가장 짙은 그늘에 비정규직 문제가 놓여 있다.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는 핵심적인 직무인 선박직 선원의 70% 이상이 비정규 노동자들이었다. 위급한 재난시 절대 권한을 갖는 선장조차 1년 계약직이었다. 대형여객선이었음에도 선원들 모두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방치돼 있었다. 지난해 한 해 선원 안전교육비가 54만원에 불과했다. 노동조합도 없었다.
노후한 선박으로 증축개조 후 과다 화물을 적재하고 운항하는 배의 위험성과 문제점을 모를 리 없는 이들 노동자들에게 세월호는 늘 탈출하고 싶은 곳이었을 게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던 셈이다. 잘못은 엄벌을 받아야 마땅하겠지만 자기 목숨 부지에만 급급했던 선장과 선원들을 마녀사냥 하듯 비난만 하는 것은 문제를 호도할 우려가 크다.
대다수가 비정규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일터에서 자기 직업에 대한 자존감과 소명의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 존중받지 못한 노동자가 자신의 일에 보람과 사명을 가지고 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정규직도 온당한 연대의식과 책임감을 갖기보다는 주어진 기득권에 안주하기 십상이다. 따라서 자기 목숨이 달린 그 긴박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돌아볼 겨를도 없었던 그 비인간의 이면에 수심(獸心·짐승같이 사납고 모진 마음)이 있는 게 아니다.
평균적인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판단 기준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걸핏하면 사람 목숨조차 비용으로 환산되는 한국 사회의 생명경시와 안전불감증이 숨어 있고, 돈 중심 물신주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나만 살고 보자는 이기주의가 깔려 있다. 돈벌이만 되면 생명과 안전은 뒷전인 채 불법이 용인되는 한국 사회의 천박한 관행과 인식이 가감 없이 스며들어 있다. 인건비를 절감하고 언제든 구조조정 수단으로 삼자고 비정규 노동자를 함부로 양산해 온 신자유주의 노동정책과 법·제도의 필연적 결말이 비극적으로 함축돼 있다.
지난 두 달 사이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가 오너인 현대중공업그룹에서 산재사고로 8명이 사망했고, 그 모두가 비정규직인 사내하청 노동자들이었다. 나쁜 일자리와 중대재해는 동전의 양면처럼 직결돼 있다. 한국 사회에서 위험의 외주화는 임계점을 넘어선 지 오래다. 수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산업현장의 대표적인 피해자이자 희생양이 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희생된 비정규 노동자들이 사고보상마저 받지 못할 상황에 놓여 있다. 우리 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일하는 노동자 자신뿐 아니라 많은 사람의 생명과 안전과도 직결된 일자리의 질에 더욱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개선해야 한다. 더 위험하고 힘든 작업일수록 비정규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고 정규직으로 제대로 된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 비정상이 일상인 곳에서 정상은 예외적인 것일 뿐이다. 지금은 드러난 현상에만 매몰돼서는 안 된다. 우리 자신과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국가와 사회의 기본과 근본을 따져 묻고 철저하게 고쳐 나가야 할 때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